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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부모의 시기심과 청소년 주체적 삶의 모멘텀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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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3/18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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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드라마에는 반전을 거듭하는 약방의 감초처럼 출생의 비밀이 구습처럼 얽혀있다. 


왜 드라마가 꼭 저래야 하는가 하지만 보는 사람이 많아서 작가와 제작자는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것 같다. 


종편사상 엄청난 시청률을 보인 <SKY 캐슬>은 우리 사회의 학습과 자녀, 성공 그리고 지위의 보장을 위한 끊임없는 욕망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보통사람들의 삶과 다른 모양이라 씁쓸하다. 


위의 두 가지를 보면 사람의 잠재의식 속에 숨어있는 현실의 도피, 도전, 우월 등 모든 인간군상의 욕망을 대별해 주는 것 같다.


특히 <SKY 캐슬>은 해피엔딩을 억지로 보여주었지만 현실사회에서는 아이들의 생각을 함께 고민하며, 힘들고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려는 이들의 눈높이를 맞춰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성공한 사람은 권력과 부의 유지를 위해서, 성공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은 삶의 목표를 위한 결승선을 지어놓고 남들의 일탈적 행위는 비난하면서도 나의 그러한 행동은 자녀를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이율배반적 행위로 포장되어지기도 한다.


일단 집안설정이나 직위부터 평범하지 않고 생활하는 가정사 모두 특별하거나 화려하고 고급스럽게 면면을 포장하였기에 누구나가 성공을 위한 시기심은 가능하다는 학습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버트란트 러셀이 말한 인간의 시기심은 평등이라는 의미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금 수저' 혹은 '다이아몬드 수저'와 같은 초월적 대상보다는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자기합리화를 위한 시기심의 정도가 매우 높다. 


여기에 교육의 조건을 걸 경우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교육에서의 학습조건은 출발점이 거의 같아야만 하는 전제에서 자녀를 위해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은 내 손이 닿을 거리에 있어야 한다고 여긴다. 


그래서 교육을 통해서 경쟁과 성공가능성이 열려져 있는 상황에서 경쟁을 위반하는 다른 조건이 개입된다면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된다. 


아니 참지 못해 분노를 하게 되어 극단적 시기심이 앞선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비교과성적의 문제나 시험문제유출 등은 제도개선의 목소리 보다는 모든 조건을 동등한 상태로 회귀해야 한다는 외침의 목소리가 더 정당하다고 여긴다.


적어도 나보다 못하거나 나와 동등한 수준으로 하향평준화를 해야 직성이 풀린다.


자녀를 위해서 세속적이라고 말해도 좋다. 남보다 우월적인 경쟁을 통해서 비교를 해도 좋다.


하지만 이러한 욕심의 이면에는 자녀보다는 나 자신의 생각이 앞서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자.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목적으로 자녀의 미래희망과 진로에 대해서 고민을 함께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


자녀를 위한 시기심은 청소년스스로의 주체성을 높이는 힘으로 작용을 하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나의 생각을 앞세워서 추동할 경우 자녀가 바라는 힘의 원천을 상실하게 될 우려가 크다. 

 

교육을 통한 성공가능성을 확인한 기성세대는 TV나 인터넷 등에서 훈훈하고 가슴을 녹이는 뉴스나 소식보다 어려운 경제로 인해 소멸이냐, 생존이냐의 갈림길에 서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그 무엇이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힘은 물질적인 것을 물려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 객체인 모두가 갖는 스스로의 힘에서부터 나타나야 한다.


가장 중요한 힘은 바로 자기 통제력과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이다.


뭐든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힘은 부모가 자녀에게 전수해 주는 물건이 아니라 자녀가 갖는 재능을 바탕으로 잘 할 수 있도록 지켜주고 격려해 주는 지지에서부터 시작된다.


시기와 질투로 가득 차 옆의 아이들과 비교하고 끊임없이 채근하는 부모가 아니라 뭐든지 잘 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도 함께 격려하여 함께하는 사람으로서의 부모가 된다면 청소년은 시기심을 자기긍정의 모멘텀(momentum)으로 이용하고 더 나은 성장의 기회로 활용하게 된다. 


나는 오늘도 '너 잘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부모인가 생각해 보자.


/디컬쳐 칼럼니스트 권일남(명지대학교 사회과학대학장)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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