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칼럼
칼럼
[칼럼]청소년인권과 권리보장의 명령
편집국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기사입력: 2019/05/13 [17:44]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이 시대의 아픔과 고난을 몸으로 숙고하며 표현한 수많은 젊은 열사가 있지만, 4.19 시대정신을 희생으로 몸소 표현한 한 김주열 군은 당시 17세의 청소년이었다.


성장과정에서 나약한 모습이 아니라 누구보다 더 열정적이고 힘찬 에너지를 기반으로 주저하지 않는 성숙함을 보였다. 또 그 행동에서 담았던 가치와 의미가 어떠한 것이었는지 지금의 우리에게 엄숙한 의미를 전하고 있다.


찻잔 속의 미풍이 될 뻔했으나 구국의 일념으로 희생한 이면에는 행동해야 한다는 양심이 밑바탕에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결과가 어떠한 아픔을 줄 것이며 그로 인한 두려움이 얼마나 클지 모르지는 않았겠지만 불굴의 투지로 만든 역사는 한 페이지로 장식되어 지금도 계속 회자되고 있다. 청소년기 그를 이끌었던 특별한 에너지가 분명히 존재하였을 것이다.


순수한 열정을 바탕으로 앞서간 시대정신을 만들었던 과거의 청소년들에게는 시대의 아픔을 보고 단순한 무임승차하기보다는 최소한의 참여를 통해 앞장서고자 했던 열정이 있었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청소년들의 순수성을 표방하는 힘은 물론, 노력도 부족하여 권리의 주체로 떠오르지 못하게 하는 압력이 너무도 거세다. 권리의 주체로 떠오를 기회를 갖지 못하게 막는 힘을 거스르지 못하고 있어 보인다.


세상을 보면 유아나 아동에서부터 청년, 여성, 성인, 장애인, 노인뿐만 아니라 소수자에 이르기까지 각기 계층의 사람들은 후견인 또는 자신 스스로 권리를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청소년은 스스로의 권리를 주장할 기회를 얻고 있지 못하다.


지극히 낮은 행복감, 학업스트레스로 고통을 받거나 꿈의 실현이 어려워도 존재감을 찾지 못한다. 과거 청소년은 사회참여의 주체적 역량을 발현하는데 어려움이 있었고 권리보장을 위한 부정적 시각이 컸지만 현재에도 청소년의 주체성에 대한 성인의 거부감이 여전하다.


선거권을 18세로 낮추자는 요구가 커지고 있고 청소년이 사회참여를 통해 적어도 자신이 생각하는 미래를 만들어 가고자 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기성세대는 학교나 학생이 정치적 마당의 소용돌이에 내몰리기에 안 된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하지만 18세 선거권의 보장을 통한 청소년의 요구는 타당한 부분도 많다. 18세면 민법에 의해 결혼도 가능하고, 공무원 임용령에 따라서 각종 공무원이 될 수도 있으며 군대도 가야 할 나이다. 말 그대로 의무는 상당히 많은데 권리보장의 책무는 여전히 미약하다.


또 좀 더 이른 시기에 국가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새기도록 너와 나 그리고 우리가 더불어 사는 공유가치를 만들어 주는 것이 더 나은 국가자원의 성장방향이 아닐까 한다.


무엇보다 학생과 청소년의 인권에 대한 기본적 가치는 헌법과 교육기본법, 유엔아동권리협약 등에 명시된 것이기에 인간으로서 보장받아야 할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는 것은 당연한 관점이다.


청소년의 인권과 권리보장의 노력은 2010년 경기도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함으로써 학생도 자율권을 가진 건강한 인격체임을 자각하게 한 전환점이 되었다.


기본권의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일각에서는 교권의 우선성을 제시하고 이의 상대적 개념으로 낮게 폄하하려는 시각이 있다는 부분에 나도 일조하고 있는지 스스로 생각을 해 보자.


마치 인간의 기본권이 법에 보장되었으되 학생과 청소년들은 예외여야 한다는 시각을 갖고 있는 대상인지 자문해 보자.


또 교권의 피해를 주장하는 사고에는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며 청소년의 권리를 다소 제한해도 된다는 성과중심적 논리가 지배하고 있지는 않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자.


좋은 학교를 갈 수만 있다면 학생의 인권보다는 교사가 권리침해를 받지 않고 유능함을 표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조금은 다른 시각에서 진실로 청소년의 인권을 생각해 보는 전환점이 되었으면 한다.


청소년의 권리보장이 필수적인 이유는 청소년이 주체적이고 자기도전적인 능력을 갖춘 인간적 존재로 성장하는데 가장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2010년 오바마대통령이 G20서울정상회담의 폐막식에서 한국기자에 질의권을 주었을 때 수동적 인간상의 모습을 보았고 그 행위를 지금 그리고 앞으로의 청소년이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청소년들이 자신의 미래를 위해 적극적으로 주장과 표현을 하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야말로 바로 어른이 해야 할 일이다. 과거 4.19혁명의 선봉에 서서 나라를 생각하던 청소년과 같이 과거, 현재, 미래를 생각하며 건강한 청소년으로 성장하도록 토양을 만드는 것이 청소년과 더불어 사는 어른들의 소통노력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청소년들이 주장하는 18세 선거권의 요구는 선악의 대립구도가 아닌 진실로 청소년의 권리와 인권의 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임을 명심해야 한다.

 

/디컬쳐 칼럼니스트 권일남(명지대학교 사회과학대학장)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디컬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