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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기]자유 찾아 망명한 화가
영화 <작가 미상>
기사입력  2020/02/07 [21:23]   이경헌 기자


1931년 독일 드레스덴을 배경으로 시작되는 영화 <작가 미상>은 ‘생존하는 작가 중 가장 비싼 작가’로 불리는 게르하르트 리히터를 모델로 한 영화다.

 

물론 그렇다고 영화 <주디>처럼 그의 전기를 고스란히 담은 영화는 아니고, 그의 삶에서 영감을 얻어 몇 가지 설정은 바꿔서 영화화 했다. 소재만 차용하고 모든 걸 허구로 지어낸 <1917> 보다는 사실적이지만 <주디> 보다는 픽션이 가미된 그 중간쯤으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어린 소년인 쿠르트는 그의 아버지가 신념 때문에 나치당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드레스덴의 아파트에서 쫓겨나고, 게다가 교사였던 아버지가 실직까지 당하지만 그의 이모인 엘리자베트는 그림을 좋아하는 쿠르트를 데리고 미술관에도 가고 하면서 그를 응원해 준다.

 

그랬던 이모가 히틀러를 생각하며 나체로 피아노 연주를 하다가 가족들의 손에 이끌려 병원에 간다.

 

의사인 제반트는 그녀가 미쳤다고 판단해 강제로 입원시키고, 앞으로 더 이상 정신병이 유전되지 않도록 그녀에게 강제로 불임수술을 한다.

 

수술을 받은 직후 그녀는 가족들도 모르게 수용소로 보내진다. 이게 다 히틀러의 정책에 따른 것이다.

 

이후 1945년 2월 13일, 그녀는 다른 수용인들과 함께 목욕탕에 갇힌 채 가스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그러나 5월 8일,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 항복을 선언한 날 곧바로 제반트 교수는 체포당한다. 하지만 그는 지구상의 자원이 한정적이라 건강치 못한 자를 죽이는 게 맞다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어찌되었던 산부인과 의사로서 많은 여성에게 강제로 불임수술을 하고, 수용소로 보내기도 하는 등 반인권적 행위를 서슴치 않았던 그는 수감된다.

 

그러던 중 교도소의 책임자인 소령의 아내가 난산(難産)으로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자 자진해서 출산을 돕고, 그 대가로 그는 소장의 특별보호 대상이 된다.

 

또 세월은 흘러 1951년, 간판을 그리던 쿠르트는 그의 재능을 알아 본 사장의 추천으로 예술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예술가’가 아닌 노동자들을 선동하는 그림을 그리도록 교육 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죽은 이모와 이름이 같은 여학생을 만나게 된다.(사실 남들은 이 여학생을 ‘엘리자베트’라고 부르지만, 그녀의 아버지인 제반트 교수는 ‘엘리’라고 부른다.)

 

둘은 가까워지고 결국 1956년 엘리는 크루트의 아이를 임신한다. 산부인과 의사답게 엘리의 아버지는 딸이 임신했음을 눈치 채고, 쿠르트의 출신 성분이 영 마음에 안 들어 엘리에게 병이 있어 임신하면 ‘자궁 외 임신’이 돼 엘리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거짓말로 강제로 낙태를 시킨다.

 

그런 고통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이듬해 결혼을 한다. 그리고 1961년 쿠르트는 잘 나가는 화가가 돼 돈도 많이 벌고, 권력자들과 친분도 쌓게 되지만 자유로운 예술활동은 하지도 못하고 체제 홍보의 수단으로 전락한 자신이 싫어 3월 13일 아내 엘리와 함께 기차를 타고 서독으로 망명한다.(사실 이때까지는 동독과 서독 사이에 장벽이 없었다.)

 

쿠르트는 뒤셀도르프의 예술학교 견학을 통해 서독의 예술 경향을 파악하고, 결국 입학허가를 받아 다양한 실험적 예술활동에 매진한다.

 

쿠르트가 자유롭게 예술에 전념할 때, 과거 동독에서 패션디자인을 전공한 엘리는 재봉사로 일하며 가계에 보탠다.

 

그러던 어느 날 엘리는 임신을 하지만 아버지의 강제 낙태로 인해 자궁에 문제가 생겨 아이를 잃는다. 의사는 그녀에게 앞으로도 임신 3개월을 넘기기 힘들 것 같다고 말한다.

 

그 즈음 회화가 죽었다고 생각해 다른 분야를 아무리 파 봐도 난항을 겪던 크루트는 드디어 1963년 사진을 그대로 캔버스에 옮겨 놓으며 자신만의 분야를 개척하는데 성공한다.

 

그는 과거 나치의 만행과 엘리자베트 이모와 어린 자신의 모습 등 다양한 사진을 그대로 화폭에 옮기고, 우연히 쿠르트의 그림을 본 그의 장인은 과거 자신의 과오가 떠올라 몸이 굳는다.

 

어쨌든 1966년 쿠르트는 친구 아드리안의 도움으로 전시회를 열게 되고, ‘작가 미상’의 아마추어 사진들을 모사한 그의 작품들은 언론의 극찬을 받는다.

 

이 영화는 그동안 제2차 세계대전을 그린 다른 많은 영화들과 달리 한 화가의 삶을 통해 나치의 과오를 고발한다.

 

히틀러를 존경해 혼자 히틀러에게 바치는 곡을 연주하던 엘리자베트는,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히틀러의 정책에 의해 강제 불임수술과 살해까지 당하게 된다.

 

어려서부터 이모의 영향으로 진실을 추구하는 살던 쿠르트는 커서 정치적 선전 선동하는 그림만 그려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그 많은 부(富)도 버린 채 아내와 함께 자유를 찾아 서독으로 향한다.

 

돈 있어도 살 수 없는 자동차 따위 보다 그에게는 자유롭게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자유가 더 간절했던 까닭이다.

 

과거 우리나라도 통행금지와 보도검열 등 국민들을 옥좨는 잘못된 정책이 존재하던 시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전직 대통령도 죄를 물어 감옥에 보내고, 기사 뿐 아니라 SNS를 통해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다.

 

이러한 자유는 절대 그 누구도 빼앗을 수도, 빼앗어도 안 되는 소중한 것이다.

 

자유의 의미와 무게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 <작가 미상>은 오는 20일 개봉한다.

 

/디컬쳐 이경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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