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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새로운 참여에 눈을 뜬 54만 명의 청소년
기사입력  2020/04/20 [10:10]   편집국

2020년 4월 15일. 새로이 선거에 참여한 18세 청소년은 매우 뜻깊고 의미심장한 사건을 경험하였고 사회적 주체자로 참여하는 색다른 길로 들어섰다. 

 

선거연령 인하로 자신의 소중한 권리를 행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절제된 과정을 거친 사회적 함의는 어떻게 표현될지 예의 주시하는 이들로 변모하게 될 것이다. 권한이 없을 때와 주어진 권한의 행사 이후 책임감과 의무감은 사뭇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규진입 청소년 유권자의 사회참여에 대해 준비미흡과 정제되지 못한 이들의 의견은 휩쓸린 표출로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만 급증한 채 여전히 청소년을 이중적 잣대로 판단하는 불편한 기준이 작동되고 있는 모습이다. 

 

기성세대가 보기에 만약 청소년의 사회조망능력이 부족하다면 어떻게 도울 것이며 더 나은 역량을 발휘하도록 해야 할 것인지의 책무를 찾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 까 한다.

 

청소년들의 사회참여보장을 위한 제도적 틀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고 청소년들은 활발한 토론과 상호 공감을 이행하면서 사회의 진면목을 바라보고 있음을 그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1991년 제정된 청소년기본법 제12조에서‘국가는 청소년특별회의를 구성․운영’해야 하며, 동법 5조의 2에서 ‘지방자치단체는 청소년참여위원회를 설치하여 청소년의 사회참여를 제도화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청소년활동진흥법 제4조에서 ‘청소년수련시설에 청소년운영위원회를 설치, 운영’하도록 명시함으로써 청소년정책과 시설이 청소년중심이 되도록 의견개진과 자발적 참여를 이루는 성장의 기회를 제공해 왔다.

 

청소년특별회의와 청소년의회, 차세대위원회 등과 같이 지역마다 다양한 이름으로 명명된 청소년참여기구는 청소년들이 의제발굴을 위해 철저한 자료수집, 활발한 자기주장, 타인의 의견 수렴 등 민주주의적 학습절차를 실천학습경험하며 성장해 왔기에 오히려 기성세대들은 자신의 청소년기에 이들보다 우월한 민주주의 학습을 이루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오히려 청소년들의 사회참여를 애써 비판적이고 불편한 시각으로 바라보았다면 스스로의 청소년참여에 대한 범주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참여에 대한 낮은 단계를 당연시 여기고 있다면 자신의 시각을 개선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참여사다리’를 정의한 하트(Hart, 1970)는 참여의 단계를 8가지로 구분하였다. 가장 낮은 외관상 참여단계로는 조작단계, 장식단계, 명목상 참여단계를 말하며, 중간적 수준인 자발적 참여단계는 역할부여와 정보제공단계, 자문과 정보제공단계, 성인주도하에 의사결정 공유단계로 나뉘고, 가장 높은 실질적 참여단계로는 청소년주도 및 감독, 청소년주도 및 성인과 의사결정 공유단계로 참여가 이루어진다고 했다. 

 

사실 참여사다리 중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조작, 장식, 명목단계는 참여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청소년을 특정 행사나 행위의 들러리로 여기면서 이를 마치 청소년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사고방식이 지배적인 모습을 자주 발견하곤 한다. 그런데 의외로 이러한 행동을 참여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오히려 청소년의 사회참여를 지원하고 조력하며 그들의 참여역량을 높이는 시험대가 잘 구동되도록 지원하고 조력해야 할 성인들이 청소년들의 사회참여를 비우호적이고 우려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불편해 하는 태도는 무엇 때문일까?

 

참여에는 반드시 뒤따르는 기득권층이 누려온 권력의 배분을 해야 함이 수반되어야 한다. 유사하거나 동등한 조건이나 대상에서는 권력의 배분을 나누기 위한 함의가 다소 쉽게 이루어질 수 있지만 청소년에게는 이의 동의가 쉽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청소년에게 유독 엄격한 잣대로 표현되는 미성년자, 잃어버린 세대, 가장 위대한 세대, 비트세대, 침묵세대, 베이비붐 세대, X세대, Y세대, Z세대, H세대 등과 같은 구분은 오히려 세대간 차별화를 고착화하는 암묵적 사고로 자리잡아 고정관념과 편견을 합리화하는 우를 당연시 여기기 때문이다. 

 

청소년에게 권력을 분점하고 성인과 대등한 위치에 서게 한 후 자신이 누려야 할 권리를 나누는 것을 매우 불편하다고 여기는 사고가 앞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소년들의 사회참여에 대해 여러 장단점으로 바라보는 시각차가 있겠지만 적어도 세 가지는 분명한 효과를 보인다.

 

첫째는 청소년의 삶에 미치는 긍정성으로 자신의 주변에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정책이 타인에 의해 만들어지기보다는 그 인과성을 파악하고 주시함으로써 자기주도적 성장이라는 내적 성찰이 이루어지게 된다.

 

둘째, 서로 함께 살아가는 공유사회의 틀을 배우는 최적화된 시기가 청소년기인데 참여를 통해서 사회에서 자신도 모르게 규정과 틀에 휩쓸리면서 취하는 수동적 자세를 극복하는 동시에 사회발전의 책임을 공유하는 능력을 배양하게 된다.

 

셋째, 청소년의 참여는 국가발전의 기반을 이룬다. 모든 정책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연속선상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청소년에게는 커져가는 미래 산업사회의 변화와 대응의 인재양성의 자발성을 경험하고 그 성과는 곧 국가발전의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결국 청소년참여의 효용성을 재인식하고 불편한 시각을 걷어내어 매년 신규진입유권자인 청소년에게 신선한 사회참여의 방법을 일찍부터 경험하도록 관심과 지원의 책무를 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 어른의 해야 할 중요한 일임을 직시해야 한다.

 

/디컬쳐 칼럼니스트 권일남(명지대학교 사회과학대학장/한국청소년활동학회장)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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