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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학대와 폭력으로 아동과 청소년의 삶이 위협받고 있다
기사입력  2020/06/15 [10:41]   이경헌 기자

최근 아동학대라는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가슴 아픈 일들을 보면서 인면수심(人面獸心)이라는 단어가 우리 삶속에 너무도 가까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계부로부터 피해아동이 화상과 폭력으로 얼룩져 하루하루의 생활자체가 정상적이지 못하였을 터인데, 눈뜨고 생활하며 보는 부모라는 존재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그리고 그 공포를 감히 우리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분명 국가는 법과 제도 확립을 통해 아동의 학대와 폭력의 예방과 방지를 위한 대안을 마련하고 지원을 하는 정상적인 틀을 갖추고 있다. 아동과 청소년의 보호에 대한 주요 법만 해도 민법, 아동복지법,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아동․청소년성보호법 등 많은 법이 존재하며 부모는 자녀 보호에 대한 적극적 역할을 하도록 천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상하기 어려운 끔찍한 학대나 체벌이 되풀이되는 여러 현상은 법이 취약해서인가, 아니면 인간의 구조적 인식오류로 부모와 자녀가 올바른 관계를 성찰해내지 못하는 한계 때문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우리 역시 건강한 지원체계가 있다는 믿음과 시스템이 잘 작동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현실세계의 구멍 난 부분을 잘 돌보지 못한 반성도 시급하다.

 

또 뿌리 깊은 부모와 자녀의 소유 관계 그리고 훈육과 자녀를 위함이라는 정당성이 부모의 권리로 인정되어왔기에 유사한 문제를 알고도 방관자는 아니었나 하는 미안함도 앞선다.

 

건강한 가족과 가정을 위해서는 법적 체계보다도 부모나 친권자의 건강한 지지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부모라는 사람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의미가 법, 제도 그리고 사회 곳곳에 뿌리깊게 박혀 있다.

▲ 사진=부모에 의한 아동학대를 다룬 영화 <어린 의뢰인> 스틸컷  

 

민법 915조의 ‘친권자는 자녀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는 조항은 자녀징벌권, 곧 부모의 학대행위에 쉽게 대처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아동학대의 80%가 부모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또 정서학대가 가장 많고 신체학대가 그 뒤를 따른다하니 서로의 믿음관계가 깨질 개연성이 부모로부터 발생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

 

그래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자녀징벌권 조항을 수정하겠다고 하니 다행이기는 하나 근본적으로는 부모라는 존재의 인식을 어떻게 개선하고 변화시킬지도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물론 법이 지닌 양면성은 징벌권의 선용과 악용의 형태로도 나타날 여지는 충분히 있다. 하지만 자녀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부모의 존재는 절대적이며 그 기능과 역할은 순기능적 의미로 작동되도록 대안의 마련은 매우 시급해 보인다. 

 

사람은 성장하면서 자신과 비슷하거나 관심 있는 특정한 대상에게 정서적 유대감을 강하게 형성하는데 이를 애착(attachment)이라고 하며 친밀한 애착은 마음속에서 건강한 안정 상태를 이루게 된다. 

 

아동기나 청소년기에 부모, 주변인 등과 안전한 애착이 이루어지면 상호작용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곤경이나 불확실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가장 가까운 부모와 애착형성이 안될 경우 불안이나 분노, 우울이라는 부정적 정서를 유발하기 쉽고, 그 결과 정서적 고립감으로 나 혼자 밖에 없다는 생각과 타인과의 적절한 관계수용이 어려워 갈등과 분노조절이 안되어 극단적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끊임없는 관계적 갈증과 목마름은 비정상적인 방법을 마치 정상적 방법으로 여기고 맹종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결국 부모자신의 잘못된 행동이 자녀와의 애착을 거부하여 부정적 정서로 고착화된 자녀는 관심을 끌고자 문제행동을 하거나, 관심을 벗어나기 위해 문제행동을 하는 양극단성을 보이게 된다.

 

이번처럼 새로이 가족이 된 부모라면 더 세심하고 친밀한 애착을 통해 이전의 상처를 아우르고 감싸야 할 터인데 학대와 폭력이라니 부모라는 단어를 깊이 있게 생각해 봤다면 이러한 행동을 할 수 있었겠는가? 다시 한 번 인면수심의 단어가 머리에 맴돈다. 

 

부모이면서도 부모를 포기한, 자녀의 학대를 일삼는 사람은 자신의 아동 및 청소년기였던 성장기에 어떤 애착관계를 가졌고, 그 대상이 누구였는지, 문제는 없는 사람인지 자신을 철저히 돌아보아야 한다.

 

지금은 결혼을 하면 어른이 된다는 인식부터 전환해야 한다. 부부의 가치와 존재, 부모가 되는 법, 부모가 되어서 자녀를 소중하게 여기는 법, 부모로서 자녀의 미래에 대하여 긍정적 판단을 내리는 법, 부모로서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자녀에게 덧입히지 않는 법 등을 배워야만 하는 시대이다.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며, 사랑하는 사람과 좋은 관계를 갖는 순간보다 서로의 상실을 경험할 때 이를 극복해야만 하는 노력을 가볍고 단순하게 여기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 

 

만남과 결별이 일상화되며 부모로서의 책무성이 약화되어 있는 이 시절에 자신들을 바라보는 자녀의 바램과 희망을 송두리째 무시하며 자신의 감정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많다면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약자인 아이들의 몫으로 전가된다.

 

부모이면서 부모가 아닌 사람, 부모의 자격이 없는 사람, 부모이어서는 안 될 사람이 많은 이 시대에 국가가 사회적 비용을 줄이려면 올바른 가정의 부부, 올바른 자녀양육의 책무성이 있는 부모, 가정을 행복하게 이어나가도록 노력하는 부모가 되도록 부모가 되는 방법을 쉽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보편화되어야 한다.

 

정부정책에 존재감이 없는 부모교육, 일부의 기관에서 하는 부모교육의 수준으로서는 아동학대를 당연시하는 자의 생각을 바꾸는 실효성을 거둘 수 없다. 

 

부모와 자녀 모두가 피해자가 되지 않는 새로운 부모교육을 대한민국성장의 핵심정책으로 도입해야 할 때이다. 

 

/디컬쳐 칼럼니스트 권일남(명지대학교 사회과학대학장/한국청소년활동학회장)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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