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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청소년을 위해서 혐오의 표현방식을 바꿔라
기사입력  2020/07/21 [00:19]   편집국

4차 산업혁명의 과도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수많은 정보에 의도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노출이 되어 있다. 특히 개인의 습관이나 취향까지 분석하고 알아서 관심 있는 제품, 더 나아가서는 관심을 가질 것으로 예상되는 정보까지 알아서 찾아주는 인공지능형 맞춤형 기술의 발달은 참으로 무섭기까지 하다. 

 

그런데 선택형 정보의 노출은 개인의 취향에 의한 것이기에 그런대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의도하지 않은 비판적 정보는 수용이 힘들 때가 많다.

 

그럼에도 일상에서 매 순간 보편적으로 접하는 정보에는 인종, 종교, 성 또는 성적 지향과 같은 것에 근거하여 사람이나 집단에 대한 혐오감을 표현하거나 폭력을 조장하거나 피해로 인하여 그들이 만들어 낸 대중연설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지 들어야만 하는 혐오표현으로 마음의 불편감이 커진다. 

 

혐오 표현은 다양한 이유에서 한 사람이나 한 집단에 대한 증오, 폭력, 차별을 확산, 선동, 조장 또는 정당화하려는 많은 형태의 표현을 말한다.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설득하기 위한 강력한 수단으로서, 또는 일방적으로 주입하려는 의도 하에서, 자신과 다르다는 사람과 행동을 한다는 점에서 가장 손쉽게 타인을 위협하거나 강력하게 표현하는 방식이 바로 혐오인 셈이다.

 

하지만 혐오표현은 민주주의 사회의 결속, 인권 보호, 법치주의에 중대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으며 더 큰 폭력과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혐오 표현은 증오 범죄를 유발하게 하는 편협함의 극단적인 형태다.

 

1인 미디어, 1인 방송, 유튜브 크리에이터 등 남들이 생각지 못한 직업영역을 발군의 능력을 만들어 낸 이들은 타인에 관심과 호기심을 촉발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면서 자극적이고 여과되지 않는 표현을 손쉽게 만들어 낸다.

 

그런데 자신의 생각을 여과 없이 표출하면서 욕설과 비속어룰 난무하는 식의 언행은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듣는 이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뿐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청소년들의 언어문화에 대한 개선요구를 많이 듣게 된다. 청소년이 자신의 생각을 여과 없이 표현하는 비속어적 언어유희에 많은 사람이 불편해 하며 종국에는 오늘의 청소년들은 왜 이런 모습인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매년 한글날이 다가오면 건강한 언어문화, 언어순화 등을 주제로 하는 청소년의식개선 캠페인이라든지 행동변화를 촉구하는 노력을 수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평소로 돌이켜 본다면 과연 청소년들의 언어문화가 문제가 있다고 감히 말할 자신이 있겠는가?

 

민주주의국가에서 자신의 생각을 누구에게나 설명하고 제시하는 자유로움에 대해 부정적 의사를 나타낼 수는 없지만 표현방식에서 너무도 거칠고 비방적인 용어로 상대의 귀를 후벼 파는 식의 표현을 하는 수준이하의 사람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 혐오발언(hate speech)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카운터스>의 한 장면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이나 다른 생각을 한다고 해서 육두문자 표현이나 듣기에 거북한 욕설과 비속어를 남발하는 유튜버의 행동에서 과연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정당화되어질 수 있겠는가? 

 

또 그러한 행위는 타인에게 어떠한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볼 문제다.

청소년은 맑고 투명한 거울을 보고 있어야 하는데 그 거울이 욕과 비속어로 가득 차 있고 자신의 마음속에서 세상을 비뚤어 보는 시각이 그대로 투영된 어른들의 모습이라면 청소년에게 달리 행동하라고 말할 자격이 있겠는가?

 

이렇게 언어를 통한 혐오라면 행동의 혐오 또한 다르지 않다. 청소년들이 벌이는 물질추구 행동이나 비행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가 거세지만 어른들의 모습에서 청소년들이 찾는 해답은 또한 무엇인가?

 

수십 채의 아파트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고 건강한 사회인처럼 표현한 그들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비이성적 행동혐오는 언어를 통해 나타나는 혐오표현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혐오표현은 종국에는 혐오범죄를 일으키는 가치관의 변화를 야기한다. 집단종속성과 동일시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강자나 다수가 표현하는 방식이 잘못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고 혐오 표현에 휩쓸려 더욱 더 강력한 부적응 행동으로 정당화하려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에게 혐오 표현과 행동이 나쁜 것은 바로 이러한 현상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혐오 발언(hate speech)이 일어나는 범위는 공공장소에서 이뤄지는 구두 연설과 인터넷, 출판물 등 다양하다. 

 

혐오 표현이 실제 물리적 폭력이나 테러 등의 범죄행위로 이어지는 혐오 범죄(hate crime)를 야기하기도 한다. 

 

비록 크게 느끼지 못하지만 우리가 사회에서 만들어내는 각종 차별이나 박해, 증오표현, 무차별 범죄 등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멀스멀 피어나게 만드는 동인(動因)이 바로 혐오이다.

 

어른들은 청소년들이 세상을 바로 보아야 하며 어른을 통해서 세상을 제대로 읽는 노력을 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작금의 혐오 표현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청소년에게 건강한 삶을 살라고 말하기보다 어른 스스로가 생각의 정제, 표현의 절제, 그리고 건강한 언어로 상대를 납득시키고 이해시키는 성숙함을 보여줘야 한다.

 

/디컬쳐 칼럼니스트 권일남(명지대학교 사회과학대학장/한국청소년활동학회장)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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