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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악플의 시대 선플의 긍정성이 필요하다

칼럼니스트 권일남 | 입력 : 2020/07/27 [17:18]

호사다마(好事多魔)나 새옹지마(塞翁之馬)와 같이 우리 일상에서 교차되는 여러 사건처럼 사회는 항상 상대적인 모양새다. 궂은일도 항상 나쁘게 마무리되지 않듯 낙심하지 않고 여력을 몰아 노력하면 좋은 일로 변화되는 게 우리의 인생사이기도 하다.

 

작금의 상황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언젠가는 힘차게 살아 볼 그날이 있기에 역경을 극복하는 에너지를 스스로 찾고 있는 바, 여기에 남까지 지원해 준다면 그 아픔은 반감되고 좋은 성과를 보이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악이 횡행해도 선이 이기길 원하고 반드시 그렇게 해 주길 바라는 바 권선징악(勸善懲惡)같이 정의는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에는 모두 변함이 없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그 승리의 선에 설 것이라는 기대에 작은 희망을 걸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보통사람이자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폭력과 혐오가 난무하는 부정의 상황이 더 크게 보이니 안타까움이 앞서고 이를 청소년들이 보고 자란다고 하니 더욱 개탄스럽다. 

 

청소년기 고통과 스트레스가 부각될수록 추억과 꿈의 축적은 소멸되고 아픔이 커져 성장의 황금기를 힘들게 보내는 이들이 많아짐을 볼 때 더 이상 좌시해서는 안 될 일이다.

 

한때 청소년들의 폭력에 대한 사회적 물의가 심각하게 대두되었던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새로운 형태의 폭력인 사이버상의 저격글로 많은 이가 고통에 직면해 있다.

 

2018년 방송통신위원회의 자료에 의하면 인터넷, 스마트폰 등의 사용자 53.1%가 온라인에서 괴롭힘인 ‘사이버 불링’으로 인한 저격 글 피해를 경험하였다고 하니 뒷담화 수준을 넘어 심각성은 극명해 보인다.

 

사이버 불링의 저격 글은 특정인에 대한 욕설이나 비방을 누구나 볼 수 있는 인터넷상에 대놓고 올리는 글로, 사이버공간인 SNS의 채팅방, 페이스북 메신저, 카카오스토리 등을 통해 사적 대화를 공론화하고 특정인에 대한 이야기를 뒷담화 형태로 게시하여 인신공격하는 데 초점을 두는 행동을 말한다.

 

청소년들이 저격 글이라는 뒷담화 형태에 노출되면 안 그래도 가뜩이나 심리적으로 미숙하여 발달과정에 있는 이들은 무기력과 두려움을 느끼게 되어 피해자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낮은 자존감, 슬픈 감정의 경험, 비참한 느낌, 계속된 따돌림과 무시 등으로 자기조절의 통제력을 잃게 되어 이 세상은 나 혼자뿐이라는 자괴감과 종국에는 극단적 행동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만큼 저격 글과 같은 악플, 혐오성 댓글은 자신의 내면에 대한 에너지를 승화하지 못하게 만들고 갈등을 있는 그대로 증폭시킴으로써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엄청난 폭력인 셈이다.

 

그러면 왜 이러한 사이버 불링, 저격 글과 같은 악플에 수많은 사람들이 쉽게 심취하는가?

 

저격 글은 타인에 대한 분노와 질투심의 감정으로 귀결되며, 피해자에게 주려는 비난을 다수 대중에게 확대하려는 의도가 매우 강하다.

 

특히 청소년들이 또래 동조를 위한 방편으로 또는 방관자가 되는 속성 때문에 쉽게 전개되는 ‘집단동조성’의 전형을 보인다.

 

‘집단동조성’은 심리학자 무자퍼 세리프(Muzafer Sherif)가 최초로 사람의 심리적 상태를 설명하면서 개인이 답을 얻기 모호한 상태에 처하면 집단의 의견을 추종하게 되는 성향이 있음을 설명한 것이다. 

 

이후 솔로몬 애쉬(Solomon Asch)는 한발 더 나아가 집단압력이 커지면 개인의 의견도 쉽게 바뀌어진다고 하여 인간이 집단이나 군중심리에 쉽게 동조하게 되는 이유를 명확히 제시하였다.

 

동조실험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쉽게 적용되는데 일명 밴드웨건효과(banswagon effect)라 불리는 편승효과에 심취해 친구따라하기 심리에 젖는 것을 말한다. 

 

즉 악플로 저격하는 이들은 주관이 없이 다수의 의견에 숨으려는 태도이거나, 비난과 저격에 열을 올림으로써 집단동조성을 실천하고 있음과 같다. 

 

자신이 스스로 판단과 의사결정이 힘들면 집단의 의견에 동조하고, 따랐던 의견에 문제가 발생시 다른 비난 요인을 적시하면 자신의 문제가 아니어서 쉽게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악플은 집단동조성을 이루며 자신의 문제를 회피하고 나와 상대방과의 문제를 모든 이에게 확대하려는 부정적 기조에서 출발하고 있기에 비난의 강도가 매우 강하고 서로의 믿음과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나 부정적 문제의 발견을 통한 확산보다는 상대방의 장점을 파악하고 남들이 한계치로 삼는 부분을 바꾸어 보려는 선플(good comment)은 역경에 처한 사람이 아픔에서 벗어나게 하는 희망의 에너지다.

 

새옹지마를 믿고 새로운 희망의 선한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확장된 시야가 나타나며 타인을 지켜주려는 태도에서 단점은 장점으로 승화되고 그 선한 글을 통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된다. 

 

긍정의 말이 많아지고 확산될수록 듣는 이의 기대감은 커지고 역경을 극복하고 활력은 증진된다.

 

같은 말에서 누군가를 비난하는 악플 보다는 마음을 정화하는 순수성이 더 큰 선플로 마음을 바꿀 수 있게 한다면 이를 듣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해 보자. 

 

또 좋은 글을 통해 청소년들은 무지한 상태에서 삶의 균형을 알아가는 도덕적 인간으로 성장하는 데 큰 힘을 얻을 것이다. 

 

즉 선플이 많다면 청소년들은 의식적으로 자신을 통제하고, 해야 할 일, 해서는 안될 일을 조정해내는 절대적 선의 능력을 빠르게 확립하고 건강한 삶을 이행해 나가는 새로운 집단동조성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디컬쳐 칼럼니스트 권일남(명지대학교 사회과학대학장/한국청소년활동학회장)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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