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엔터테인먼트 > 한국영화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광고
[미리보기]좋은 유괴범은 없다
영화 <소리도 없이>
기사입력  2020/10/09 [17:07]   이경헌 기자


유괴를 소재로 한 영화 한 편이 또 개봉을 앞두고 있다. 지난 달 29일 개봉한 영화 <담보>에 이어 오는 15일 개봉하는 영화 <소리도 없이>가 바로 그것.

 

하지만 두 작품의 결은 완전히 다르다. <담보>의 경우 아이 엄마에게 빚 독촉을 하는 과정에서 아이를 담보로 데리고 왔다가 아이 엄마가 본국으로 추방되면서 어쩔 수 없이 수십 년 동안 아이를 키우는 내용이라면, <소리도 없이>의 경우 조폭의 부탁으로 며칠만 아이를 맡았다가 해당 조폭이 죽으면서 아이의 처치가 곤란해지자 아이 부모에게 돈을 받아내려고 한다는 내용이다.

 

<담보>가 코미디가 가미된 감동 드라마라면, <소리도 없이>는 범죄 영화다.

 

태인(유아인 분)과 함께 계란을 파는 창복(유재명 분)은 투잡으로 시체 뒤처리를 한다. 정확히 어떻게 이 일을 시작했는지는 안 나오지만, 돈 벌이를 위해 우연히 조폭의 범죄 현장을 청소하는 일을 하게 되면서 이 일이 꽤 수입이 짭짤해 계속해서 일을 하는 것이리라.

 

다른 때와 같이 조폭이 죽인 시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실장’이라는 남자가 창복에게 자기가 알려준 장소에 가서 사람 하나를 데려다가 며칠만 데리고 있으라고 한다.

 

창복은 ‘청소’는 범죄가 아니지만, ‘유괴’는 범죄이기에 처음에 펄쩍 뛰지만 결국 돈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무릎을 꿇는다.

 

그가 알려준 장소에 가보니 어린 여자 아이(문승아 분) 하나가 있어 이건 진짜 아니지 싶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알고 일단 아이를 데리고 나온다.

 

창복은 자기 집은 (도심이어서) 보는 눈도 많고, 행여 아이가 도와달라고 소리라도 치면 다리가 불편한 자기는 도망가지도 못하고 유괴범으로 잡힐 테니까 외딴 곳에 사는 태인한테 아이를 데리고 있으라고 말한다.

 

태인 역시 영 내키지 않지만 창복 아니면 돈 벌이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처지인지라 일단 그가 시키는 대로 한다.

 

다음 날, ‘실장’에게 아이를 언제까지 데리고 있으면 되는지 물으려 하지만 조직 내에서 배신자로 몰려 이미 그는 죽었다.

 

아이의 부모가 누군지를 알아야 돌려보내든 할텐데 그것도 모르지, 아이 부모에게 돈 받기 전까지 잠시 데리고만 있으면 돈을 주겠다던 실장은 죽었지 참 난감하다.

 

여기까지만 보면 창복과 태인이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아이에게 부모님 연락처 알려주면 곱게 보내주겠다고 말하는 대신, 이왕 이렇게 된 것 진짜로 유괴범이 되어 보기로 한다.

 

실장에게 듣기로 아이 아빠가 ‘딸’이라는 이유로 몸값을 깎으려고 해서 협상 과정에서 잠깐 며칠 데리고 있어 달라고 한 것인데, 돈을 깎으면 어떻게 다 주면 어떠랴. 어차피 1년 내내 계란 팔아서 버는 돈 보다야 많지 싶은데 말이다.

 

결국 돈 앞에 창복과 태인은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된다. 바로 이 부분이 이 영화 <담보>와 다른 점이다.

 

유괴는 분명 잘못된 행동이다. 하지만 백번 양보해 얼떨결에 아이를 유괴했다고 하더라도 <담보>와 달리 이 영화에서는 아이를 단지 돈벌이 수단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범죄 영화라 할 수 있다.

 

아무리 태인과 창복의 상황을 이해하려 해도 어쨌든 범죄는 범죄다.

 

창복이 죽은 후 태인은 혼자 아이를 돌보다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데려다 준다.

 

아이의 담임은 태인이 누군지 묻고, 아이는 귓속말로 자기를 유괴한 범인이라고 말한다.

 

사실 태인이 일부러 아이를 유괴한 것도 아니고, 구타를 하거나 성적학대를 한 것도 아니다.

 

어린 자신의 동생과 함께 나름대로 잘 돌봐줬다. ‘돈 줄’인 아이가 도망갈 수도 있으나 자기 동생과 같이 있기에 차마 문을 잠글 수는 없어서 열어뒀다.

 

유괴당한 아이도 언제든지 문을 열고 나가려면 나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의례히 자신이 갇혀있다고 생각해 탈출할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것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인에게 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아이를 데리고 있던 이유가 아이 부모에게 몸값을 받아내기 위한 것이었으니 이는 분명 범죄다.

 

그런 까닭에 아이는 자기에게 해코지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태인에게 마음을 열기 보다는 태인을 범죄자로 인식한 것이다.

 

간혹 범죄피해자가 범죄자와 오래있다 보면 그를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지만, 그렇든 저렇든 범죄자는 범죄자다.

 

하지만 이 영화는 태인과 창복을 범죄자로 인식하기보다는 그들도 어쩌다보니 상황이 그렇게 된 것이지 범죄자까지는 아니라는 듯한 인식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디컬쳐 이경헌 기자

ⓒ 디컬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