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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언택트를 온택트로 푸는 청소년시설
기사입력  2020/10/26 [20:42]   편집국

한 사람이 누구에게 새로운 변화를 취해야 한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자신이 변화의 주체가 되기는 매우 어렵다. 

 

특히 심리적 어려움을 통해 좌절과 우울을 경험하고 있는 위기적 상황이라면 더욱 더 터널시야에 가려져 있어서 스스로의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

 

코로나19로 인한 심리적 위축을 오랫동안 경험한 상태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야 할 때 자신의 업무가 아닌 타인을 돕는 일이 주 업무영역에서 행사는 사람의 책무라면 생각의 전환을 실현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의 전환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도록 열정을 보이는 곳이 눈에 띠는데 바로 청소년센터라는 시설이다.

 

청소년지도사가 청소년센터에서 현실의 한계를 극복하고 변화의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가 되기 위해 혁신성으로 무장하고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노력으로 청소년들을 만나기 위한 방법을 찾는 모습이다.

 

대면접촉을 피하여야 하는 극단적 상황에서 만들어진 언택트(untact)는 아무것도 모르는 두려운 상태에서 해야 하는 최선의 대책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추구해 왔던 관계중심적 사회적 유대망이 효율적이어야 한다는 가설을 여지없이 붕괴시켰고 단절이 일상화된 생활과 유통구조로 개인의 가치를 중시하는 형태로 전환시켰다. 

 

일상의 사회적 관계와 다른 ‘사회적 거리두기정책’은 친밀한 거리를 만들어야 인간관계에서 유익함을 보인 역량을 여지없이 타파시켜 옆 사람의 작은 기침, 대화형태도 의식해야 하는 만남의 두려움이 증폭되었다.

 

가장 활발한 신체성장의 폭발을 경험하는 청소년들은 다른 세대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역경의 통로를 지내고 있다. 이전에는 청소년센터를 통해서나마 자신의 역량을 표출하고 에너지의 발산통로를 경험하였으나 이마저 막힌 상황에서 그들 스스로 돌파구 없는 삶은 다른 대상들보다 더 처절하고 힘든 모습이다.

 

언택트가 주는 무대책은 더욱 더 청소년에게는 힘든 일상을 맞이하게 해 주는 고통인 셈이다. 

 

사실 언택트의 본질은 정책의 수용관점에서 매우 낮은 취약성이 있다. 위기의 모면을 위한 언택트는 행정체계에서 가장 낮은 해결책이다. 그저 모이지 못하게 시설을 폐쇄하고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청소년에게 양질의 체험을 제공했던 청소년센터는 청소년이 와서는 안 되는 곳, 프로그램을 진행하지 않아야 하는 충실한 언택트 공간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청소년센터는 어떠한 곳인가? 청소년센터에 청소년이 없는 것은 시설의 존재이유가 없으며 청소년지도사의 역할 역시 의미를 상실할 수밖에 없다는 불편감은 이들 스스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하였기에 언텍트를 온택트(ontact)로 전환하는 방법을 일시적이지만 찾았다.

 

언택트적 사고는 마냥 기다리고 위의 눈치만을 보면 되지만 온택트를 생각하면 그동안 해 왔던 온갖 방법을 새롭고 혁신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청소년에게 투영시키고 생각의 공유하는 플랫폼을 만들어 가는 가능성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그렇지만 과연 이들은 이전부터 온택트의 능력을 갖추고 있었을까? 전혀 아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참고 기다리는 것이 능사’가 아닌 새로운 이를 만들거나 이를 대신할 방법을 찾으라고 했던가? 

 

또 궁즉통(窮則通)이라 청소년을 만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하는 혁신성은 청소년지도사들에게 이전과 전혀 다른 방식이 가능하다는 활로를 만들어 내게 된 점이다.

 

비록 청소년보다 정보능력이 낮기는 해도 오랜 시간 청소년들과 함께 단련된 생각을 프로그램개발이라는 다양성과 창의성을 직접 실험하는 기반으로 삼았던 각종 동아리활동, 체험활동, 지역사회탐색활동, 자원봉사활동, 학습지원활동, 창의탐구활동, 진로탐색활동 등의 경험에서 비대면으로도 가능하다는 돌파구를 만들어 낸 것이다.

 

온택트를 위해서라면 기획과 준비의 시간, 정보를 전달하는 방법의 한계, 생각의 연계가 이루어지는 시간차로 인한 불편감 등 힘들고 어려운 부분이 무척이나 많지만 그래도 청소년과 어떤 도구로라도 만날 수 있다는 데 행복한 모습이다.

 

학교와 집을 오갔던 청소년들에게는 온라인을 통한 접촉은 일상의 접촉과도 전혀 불편하지 않은 점으로 방구석에서의 뒹구는 신세였던 청소년들에게 가뭄의 단비 같은 효력을 나타냈다.

 

대면방식보다 3~4배 이상 힘든 노력과 열정이 필요한 온택트는 온라인이용에 최적화되어 있는 청소년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한 자기혁신의 노력으로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 냈고 그 방식 속에서 청소년의 변화를 돕는 데 일조를 하고 있다고 자평하며 청소년지도사들도 만족감을 보이는 모습이다.

 

언택트에서는 무기력하였던 청소년지도사가 온택트로 생각을 전환한 순간 청소년센터에서는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어 다채로운 활동이 창의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물론 가야 할 길은 멀지만 게임대회로, 댄스와 동아리경진대회로, 진로 알리기로, 과학발명실험으로, 각종 소품 배달서비스로 청소년이 자신의 원하는 바를 경험하고 또 언젠가 필요할 미래사회 역량의 계발을 위한 기회로 똑같이 활용하고 있게 되었다.

 

온택트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청소년센터는 공간의 제약이 청소년을 위한 기회부여의 부족에 문제가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청소년센터를 지원하는 중앙행정기관이나 지자체도 역경 속에서도 청소년을 만나고 청소년들이 주체적인 문화를 만들어 가는 가능성을 더욱 활성화하며 소통의 창구를 이용하도록 행․재정적 지원을 적극 도모해야 할 필요가 있다.

 

언택트냐 온택트냐가 중요함이 아니라 누구나 현 위치에서 위기대처의 능력을 포용하지 못하면 도태되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청소년지도사의 열정이 있는 한 대한민국의 청소년이 글로벌시대를 주도해 나갈 역량을 충족시키는 힘을 청소년센터에서 얻는 게 충분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한다. 

 

청소년과 함께하는 온택트가 새로운 만남의 대책으로 자리잡은 것처럼 새로운 시대변화에 맞추기 위한 혁신의 노력을 하는 순간 누구든 최적화되는 돌파구는 만들어지게 된다. 

 

위기 속에서도 가능성을 찾는다면 존재의 의미와 역할의 중요성이 더 커지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디컬쳐 칼럼니스트 권일남(명지대학교 사회과학대학장/한국청소년활동학회장)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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