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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왜 이 시대 어른이 없는가?

칼럼니스트 권일남 | 입력 : 2021/03/10 [10:34]

세상이라는 곳은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의 생각을 얽히고 성기게 하면서 복잡다단하게 만들어내고 살아가는 곳이다. 인생이 때론 얽힌 실타래모양이어서 한없이 힘들고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하지만 잘만 풀어내면 평탄하고 어려움 없는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인생역경이라는 말과 함께 회피하거나 아님 오히려 강력하게 부딪치면서 자신만의 원만한 대처방법을 찾고자 노력하고 여러 부류의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인생의 경로가 각양각색이어서 어떠한 경험의 수준에서 구성되어질 수 있는가에 따라 자신의 삶에 대한 이력과 여정의 고단함은 상대적으로 힘들게 또는 무난하게 이어지게 된다.

 

그럼에도 누구나가 꿈꾸는 미래는 힘들지 않으면서 희망에 찬 날들로 가득 찬 곳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자 하지만 여기에 반드시 남들보다 더 나아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면 상당한 오류가 나타나게 된다. 

 

물론 희망의 삶을 갖고자 함은 사람들이 바라는 기대치가 아닐까 하지만 커다란 오류를 일상적으로 갖고 사는 이들은 남과의 비교(比較)를 일상화하면서 유튜브나 댓글에 숨어서 나보다 경제사회적으로 우월한 사람은 험담과 비난을 극한까지 쏟아내고, 자신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사람을 교만하게 헐뜯는 잘못된 가치관으로 점철된 사람은 비교적 비난을 당연시 여기며 살아간다. 

 

한 사람의 생애주기적 관점에서 본다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인생여정이 비슷하거나 또는 극단적으로 다르기도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삶을 통해서 자신에게 유익한 점을 얻고자 하는 노력은 끊임없이 해야만 하는 것이라서 타산지석의 모델을 찾고 쌓아가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삶이 풍부해 진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은 시경(詩經) 소아편 학명(鶴鳴)에서 유래된 구절로 ‘군자도 수양과 학식을 쌓는데 소인으로부터 배울 점이 있다’는 말이다.  다른 사람의 작은 행동이나 결과를 보면서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게 됨을 말하는 것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 유익을 만들어 내는 데 중요한 기제가 된다. 

 

우리는 사회에서 누군가에게 귀감이 되는 노력을 하고자 하는 것이며 그 역할을 하였을 때에 가르침을 통함보다는 배움의 결과를 얻는 소중함이 더 크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아 안타깝다.

 

군자라 칭하는 사람도 배움의 기회를 얻고자 무한한 노력을 할진 데 타산지석이 없거나 타산지석에서도 배우지 못하는 그 사람의 삶은 실로 안타까운 것 같다.

 

그런데 여기 저기 둘러 봐도 군자는 차치하고 어른이 보이지 않는다. 청소년들은 어른이라는 굳건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행실과 자세를 먹이로 먹고 되새기며 살아가야 하는데 이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작게는 일상의 터전에서부터 넓게는 전 사회적 분야에서 귀감이 되는 선한 영향력을 보이는 사람이 많아져야 하는데 과연 작금의 청소년들에게 귀감이 되는 어른이 얼마나 있는지 잘 모르겠다.

 

3·1독립선언으로 나라를 빼앗긴 설움을 이겨내고자 어린 나이에도 앞장섰던 유관순열사나 4·19로 당시의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고발하고자 분연히 선두에 섰던 김주열 열사 등 당시를 살아갔던 젊은 청소년이자 또래였던 이들이 어른에 주는 경종이자 메시지는 사뭇 장엄하다.

 


TV프로그램 중에서‘어쩌다 어른’이라는 제목이 눈에 띤다. 내용의 속성을 떠나서 상징적 의미가 작금의 어른이되 어른이 아닌 이들의 사회적 맥락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 더 크게 가슴에 다가온다. 

 

눈을 떠보니 어른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금자탑을 쌓아가면서 나와 주변사람 그리고 여타의 사람들에게 많은 귀감을 만들어 가는 어른이 되었어야 하는데 이들이 너무도 적은 것 같다.

 

어른이되 어른이 아닌 사람들보다 어른이면서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발휘하며 본보기가 되어져야 할 사람들이 많다면야 얼마나 좋겠냐마는 어른의 테두리를 둘러쓰고 있기는 하나 분노로 가득 차 서로의 갈등을 조장하는 이들이 더 많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독선과 아집에 둘러쌓여 있는 이들은 어른이며 어른 아닌 피터팬신드롬(Peter Pan Syndrome) 또는 키덜트(Kidult)라고 하는 사람들이다. 나이는 계속 들어가지만 영원히 아이들로 남고 싶어 하는 어른은 세상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책무와 의무를 포기한 채 관심을 받기 위한 존재로 살아가려다 보니 정작 청소년들에게 어떠한 말로도 공감이라는 단어를 전달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생각이나 행동은 전혀 어른 같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지 못한 채 타인의 잘못을 들어 내고 지적하기에 바쁘다. 

 

자신이 잘못을 해도 다툼이 발생하면 상대방에게 나이먼저 묻고 자신의 잘못을 은폐하려 군림하며 엉뚱한 기준으로 경륜과 학식을 들먹이는 사람은 곧 자신의 치부를 스스로 들어내는 어른이 아닌 꼰대들이다.

 

세상은 위대한 선각자라는 특별한 사람을 원하고 있지 않으며 우리의 소시민적 일상에서 위대함을 자연스럽게 발휘하고 알려 주며 날마다 자신의 모습을 보며 선행을 쌓아가도록 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많다.

 

이러한 선각자는 때론 지하철에서나 버스에서, 또는 청소년들이 지내는 일상의 어느 곳에서든지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면서 세상은 더불어 사는 사람들과 살맛나는 곳이라는 것을 알려 주는 어른이 많을 때 희망이라는 가능성은 더욱 굳건해지게 된다.

 

나는 지금 어른이되 어떤 어른인가? 그리고 청소년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지 자문(自問)해 보고 내가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고 할지 모르나 작은 곳에서 청소년들을 위해 어떠한 모습으로 보여 지기를 원하는지 깊이 있는 성찰과 질문을 해 보자.

 

‘어쩌다 어른’이 아니라 청소년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이들의 생각을 읽으며 진정 속이 꽉 찬 사람으로 자신의 이름에 책임을 다하는 어른이 되고자 노력해 주기를 바란다.

 

/디컬쳐 칼럼니스트 권일남(명지대학교 사회과학대학장/한국청소년활동학회장)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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