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렇다고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일률적으로 똑같은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봤을 때 형평성에 어긋난다.
대학 졸업 후 아직 취업하지도, 결혼하지도 않은 20대 여성이 앞으로 벌 수 있는 돈의 액수와 앞으로 얼마나 돈을 벌지 전혀 데이터가 없는 갓난아기, 그리고 연봉 10억 원의 대기업 임원이 똑같은 보상금을 받는 것은 문제가 있다.
누구에게 2억 원은 10년치 알바비이지만, 누구에겐 몇 달치 월급밖에 되지 않는다.
때문에 세월호 사고나 9·11테러 같은 대형 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망보험금을 책정하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영화 <워스>는 9·11테러 희생자들의 목숨값을 책정하는 일을 맡았던 변호사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9·11 테러가 발생하자 미국 의회는 ‘9·11테러 피해자 보상기금’을 설치하고, 위원장에 케네스 파인버그 변호사를 선임한다.
평소 석면 피해자 보상금 지급 등의 업무를 많이 해 본 그는 이번에도 그동안 해 온대로 각자의 직업이나 소득을 감안해 개개인별 가치(worth)를 책정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보험금 산출 공식을 만들어 유족들 앞에서 설명을 한다.
하지만, 9·11테러는 석면 피해 보상금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걸 그는 몰랐다. 세계무역센터에 입주한 대기업 직원들은 출입카드 기록을 통해 당시 누가 건물에 있었는지 파악도 되고, 구조임무에 투입됐다가 희생된 경찰이나 소방관도 쉽게 파악이 가능하지만 예컨대, 세계무역센터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포장해 가지고 나오다 희생된 사람이나 잠깐 1층 화장실에 볼일 보러 들어간 사람의 신원은 파악이 안 된다.
그런 까닭에 정확한 희생자 수가 몇 명인지도 파악이 안 된다.
의회에서는 2년 안에 대상자의 80% 이상이 동의서에 서명해야 보상기금을 지급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는데, 몇 명인지 알아야 80% 이상 동의를 받든 말든 할텐데 첫 관문부터 쉽지 않다.
게다가 해당 건물에 근무하던 대기업 임원의 목숨값보다 구조를 위해 투입됐다가 순직한 소방관의 목숨값이 더 하찮다고 할 수도 없다.
이에 유족들은 케네스 파인버그가 제시한 보험금 산출 공식에 화를 낸다.
더 복잡한 사정도 있다. 예컨대 희생자의 유족이 동성커플이었다면, 과연 유족으로 인정해야 할까? 어떤 주에서는 동성결혼을 인정하고, 어떤 주에서는 인정하지 않으니 사는 지역에 따라 보상금을 받을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 벌어진다.
심지어 아들의 동성결혼을 반대해 인연을 끊고 사는 부모가 보상금을 받을 수도 있게 된다.
이를 위해 예외조항을 둬서 구제한다면, 예외조항만 수백 개를 만들어야 할 수도 있다.
혹은 희생자의 아이가 3명인 줄 알았더니, 갑자기 내연녀가 나타나 희생자에게 아이가 2명 더 있다고 주장한다면 과연 내연녀와 그 자녀들에게도 보상금을 줘야 할까?
고액연봉을 받는 희생자의 유족들도 마찬가지로 불만이 있다. 산출 공식에는 연봉만 기준으로 삼았는데, 대기업 임원의 수입이 많은 이유는 주식배당금이나 보너스가 많기 때문인데 이 부분이 반영되지 않아 실제 수입보다 적게 보상받게 된다는 논리다.
그렇다고 기업의 실적에 따라 매번 달라지는 보너스나 주식배당금까지를 포함하기도 애매하다.
영화 <워스>는 9·11테러 보상금이라는 소재를 통해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준다.
보상 책임을 맡은 케네스 파인버그는 정부(의회)의 보상제의를 거부하고, 개별적으로 항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게 되면 소송기간도 길어지고, 승소할 가능성도 낮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정부에서 알아서 준다고 할 때 더욱이 소득세 등도 떼지 않으니 얼른 동의서에 싸인하는 게 유리하다고 유족들을 설득한다.
하지만 유족들은 정부에서 개개인별로 목숨에 대해 값어치를 매긴다는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서 인간은 누구나 존엄한 존재지만, 그렇다고 똑같은 가치가 있는 존재일까?
이에 대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 <워스>는 오는 21일 세계 최초로 국내에서 개봉한다.
/디컬쳐 이경헌 기자 <저작권자 ⓒ 디컬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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