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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청소년의 자기결정권 주장과 책무성

칼럼니스트 권일남 | 입력 : 2021/09/06 [23:21]

지난 8월 25일, 10년 동안 지속해 왔던 게임관련 규제로 일컬어지는 셧다운제를 폐지하면서 정부는 청소년의 자기결정권을 들고 나왔다.

 

사실 자기결정권은 굉장히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소지가 많은 용어이기는 하지만 개념적으로 보면 헌법 제 10조에 명시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와 제 11조의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ㆍ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조항에서 자기결정권이 부여하는 의미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인간은 누구나 존엄한 존재로서 인격권을 가지고 있으며, 행복추구권을 통해서 누구로부터 간섭을 받지 않고도 자신에게 부여된 가치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결정권한을 보유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자기결정권을 가진 존재에게 제11조에서 평등과 신분, 차별 등을 받지 아니한다는 조항을 명시한 것은 자기결정권이 있음에도 여러 가지 이유에 의해서 불평등, 계급적 구조, 차별 등과 같은 구조적 모순에 접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으며, 그러한 제도적 문제로부터 자칫 잘못된 판단과 행동, 사고를 하도록 강요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역설적으로 인간은 사회적 관계를 지향하다 보면 아무리 자기결정권을 지닌 인격적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사소한 행위나 구체적 제도의 이행과정에서는 자기결정권이 퇴색될 우려가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는 것과 같다.

 

인격권을 가지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사람에게 계급적 구조의 형성과 차별이 당연시되는 구조적 모순 속에서 살아가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인간의 존재에 대한 배려와 서로 간의 균형적 삶을 이어나가도록 하는 노력을 항상해야 하는 누군가 또 어떤 존재는 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자기결정권이 사실은 잘 적용되지 않는 대상이 여럿 있지만 그중 특별하게도 청소년에게 당연시되기도 한다.

 

우리는 청소년이 미숙한 존재라는 생각을 펴거나 규제의 일상화에서 벗어나면 안 되는 대상임을 머릿속에 각인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무서울 만큼 이들이 잘못한 행위를 집중 표출시키면서,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에게는 보편적 자기결정권을 줘서는 안된다는 사고가 팽배해 있어 보인다. 

 

마치 시혜적 관점으로 보는 사고가 있으며, 청소년에게는 자기결정권보다는 ‘타인결정권’을 주장하려는 속성이 더 커 보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번 셧다운제의 폐지를 결정하면서 자기결정권의 강화라는 의미를 강력히 주장하였고 동시에 선택적 셧다운제라는 말로 포장을 했다. 

 

강제적과 선택적 의미로 포장되었을 뿐 자기결정권이라는 의미의 본질이 변화되었다고 판단되지는 않아 보이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어쨌든 선택적이든 강제적이든 셧다운제가 폐지되면서 게임의 혼란과 갈등에 대한 논의보다는 앞으로 청소년을 대하는 정책적 변화가 어떻게 전개되어야 하는지의 의미심장함이 더해진다.

 

여전히 게임이라는 수단과 도구를 두고 어느 선이 적정하냐의 기준을 이제는 개인에게 맡겨 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위험한 논리가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가 셧다운제를 폐지하더라도 국민이 스스로 어떠한 기준으로서 게임의 선택과 조절을 해내도록 하는 가의 자기결정권을 내포하도록 하는 것은 여전히 국가가 가져야 할 중요한 책무이기 때문이다.

 

지난 10여년 동안의 셧다운제를 시행함에 있어 지금 제기하는 자기결정권의 의미를 수렴하고자 정부가 어떠한 노력을 해 왔으며 그러한 노력이 결실이 있는지를 평가하고 판단해 보는 최소한의 노력이 있어 왔는지를 함께 밝히는 행위를 해야 한다.

 

그동안 게임산업의 발달을 보면서 청소년이 스스로가 자신의 수준에 맞게 게임을 선택하여 조절하고 게임의 시작과 중단을 위한 자제력을 충실히 보이면서 동시에 게임을 통해서 자신의 역량을 계발해내고 사회에 유익한 존재로서의 성장해 나가도록 하는 의식적 변화에 노력하였는지를 말이다. 

 

또한 이러한 의식을 발현하도록 각종 정책과 과제를 수렴하여 청소년과 그들의 부모가 상호 동의할 만한 수준으로 사회 저변의 인식이 개선되었는지를 알려주고 이해하도록 하는 노력이 있었는지를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게임의 셧다운제 폐지를 일성으로 제시한 자기결정권은 이제 청소년들의 성장과 삶을 지탱해 내도록 하는 정책의 중요한 축이 되어야 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보호와 복지중심의 청소년정책 역시 크게 바뀌어야 함을 의미한다. 

 

새로운 세계를 스스로 발견하고 찾아가며 지금보다 더 나은 가능성을 발현하도록 하는 기회의 장을 열어주되 그러한 선택을 청소년 스스로가 해 보도록 하는 마당을 열어주는 정책의 변화를 수렴해 주어야 한다.

 

만약 이러한 정책적 조류나 기회를 제공하지 않고 지금처럼 청소년들을 보호와 복지적 관점으로만 대하면서 표면적으로는 자기결정권을 말하는 것은, 상황에 따라서 자기편리대로 상황을 모면하고 피해 가려는 너무도 잘못된 정책의 운영이라는 점을 직시하고 깨달아야 한다.

 

/디컬쳐 칼럼니스트 권일남(명지대학교 청소년지도학과 교수/한국청소년활동학회장)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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