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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기]노래를 통해 인권을 부르짖다

영화 <빌리 홀리데이>

이경헌 기자 | 입력 : 2021/10/26 [16:29]


1915년 4월 7일 태어나 1959년 7월 17일, 우리 나이로 45살이라는 짧은 삶을 살다 간 재즈 가수 빌리 홀리데이의 인생을 다룬 영화 <빌리 홀리데이>가 지난 25일 기자시사회를 개최했다.

 

“다른 사람처럼 노래하면, 노래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남긴 그녀는, 1937년 미국 상원에 아프리카계 미국인 린치 금지법이 상정은 됐으나 통과되지 않자 1939년 <스트레인지 프룻>이라는 곡을 통해 이를 비판했다.

 

이 곡으로 그녀는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게 된다. 하지만, 정부 입장에선 자칫 그녀의 노래로 인해 대중들이 들고일어날까 싶어 걱정스럽다.

 

이에 1947년 정부는 어떻게 빌리가 이 노래를 못 부르게 할까 고민하다가 마약 투약 혐의로 그녀를 잡아들인다.

 

사실 누명은 아니고, 실제 그녀는 마약중독자였는데 10살 때 강간을 당했던 상처가 있어 마약으로 간신히 그 기억을 잊으려 애썼던 까닭이다.

 

어쨌든 결국 그녀는 징역 1년 1일을 선고받는다. 석방 2달 후 그녀는 카네기홀에서 공연을 개최한다. 주요 인사를 비롯해 많은 팬들이 그녀의 컴백 공연을 보러 왔을 정도로 그녀의 인기는 식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정부에서 그녀의 클럽 공연권을 막아버려 앞으로 행보가 막막해졌다.

 

그런 그녀에게 레비라는 남자가 자신이 클럽 공연권을 줄 수 있다며 접근해 성 상납을 받는다.

 

게다가 빌리의 백인 친구인 털룰라에게 연방요원은 둘이 동성애를 즐기는 사이냐며 모욕적인 질문을 한다.

 

이래저래 마음이 좋지 않은 빌리는, 레비가 제대로 정산을 해주지 않자 괴로운 마음에 다시 마약이 생각나지만 참는다.

 

정부는 함정수사를 통해 그녀가 마약을 했다며 잡아들이지만 법정에서 진실이 밝혀져 그녀는 풀려난다. 그리고 1949년 전국 순회공연을 떠난다.

 

전국 순회공연으로 다시 국민들을 선동할까 걱정되는 FBI는 어떻게든 공연을 막기 위해 그녀가 마약을 하지 않을까 계속 감시한다.

 

이후 1957년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자기가 계속 <스트레인지 프룻>을 부른 이유는 “린치는 인권문제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1959년 7월 17일 그녀가 죽자, 마약단속국은 헤로인을 찾았다며 그녀의 시신을 체포하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그래미 명예의 전당에 오른 <스트레인지 프룻>을 통해 빌리 홀리데이가 그렇게도 꿈꾸던 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다. 지난해 2월 미국 상원에 반(反)린치법이 발의됐으나, 아직까지도 통과되지 않았다.

 

노래를 통해 흑인 인권을 부르짖던 빌리 홀리데이의 삶을 그린 영화 <빌리 홀리데이>는 다음 달 4일 개봉한다.

 

/디컬쳐 이경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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