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태몽으로 푸른 용(龍)의 꿈을 꾸어서일까? ‘김홍길동’은 특이한 이름만큼이나 특이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
보통 우리가 외국인을 지칭할 때 ‘푸른 눈’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데, 김홍길동은 순수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푸른 눈을 가졌다.
가장 흔하지만, 실제로는 접하기 힘든 이름인 ‘홍길동’이라는 이름을 가진 ‘김홍길동’. 그는 특이한 외모와 특이한 이름뿐 아니라 특별한 능력도 가진 존재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다른 친구들은 단군신화를 배울 때, 김홍길동은 단군신화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다룬 논문을 읽고, 2학년 땐 담임교사보다 더 줄넘기를 잘했고, 3학년 땐 십만 단위 곱하기 십만 단위의 암산을 할 정도로 지적·신체적으로 남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면모를 보였다.
중학교에 진학해선 남들이 중2병으로 고생할 시기에, 그는 한 대학에서 주최한 공모전에 인간의 감정을 에너지로 변환해 배터리 형태로 저장하는 아이디어를 제출했다.
하지만 이렇게 뛰어난 그에게 한 가지 단점(?)이 있었으니, 바로 주체할 수 없는 분노다. 단순히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한 번 제대로 화내면 주위의 물건들이 공중으로 떠오르고, 박살 난다는 게 문제다.
그의 이런 모습을 본 주위 사람들은 자신들과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그를 ‘괴물’ 취급하기 일쑤다.
결국 그는 자신을 괴물처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중2 때 자퇴해 15년 동안 카센터를 운영하는 엄마의 일을 도우며 은둔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과거 그가 공모전 낸 아이디어에 관심을 가지고 10년 넘게 그를 찾던 박차원 교수와 만난다.
박 교수는 자기와 함께 인간의 감정 중 분노를 배터리로 저장하는 연구를 진행해 보자며 그를 설득한다.
그렇게 홍길동은 자기 외에 다른 누구라도 분노를 에너지로 바꿔 배터리 형태로 저장하는 연구를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연구의 끝이 보이기 시작할 즈음 박 교수는 중학교 중퇴 학력인 김홍길동을 무시하며, 이 연구를 자기 혼자 독식하려 한다.
창작집단 LAS가 지난해 12월 낭독극의 형태로 관객들에게 소개한 바 있는 뮤지컬 <김홍길동: 분노는 나의 힘>이 지난 4일 개막했다.
소극장 공연이지만, 영상을 적절히 활용해 결코 무대가 작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작품에는 ‘안내자’라는 역할의 5명의 배우가 나오는데, 이들은 책상이 되기도 하고, 김홍길동의 엄마가 되기도 하고, 박 교수가 되기도 한다.
이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거나 주인공 김홍길동의 마음을 대변하기도 한다.
이 작품은 ‘차이’와 ‘차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극중 김홍길동은 분명 남들과 ‘다른’ 능력을 소유했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그가 이런 능력을 지녔다는 이유로 자신과 다르다고 인정하지 못한 채, 그를 ‘돌연변이 괴물’이라며 ‘차별’한다.
또 극 후반 김홍길동이 우연히 길에서 만나게 되는 ‘하길탁’이라는 고등학생 역시 또래와 달리 백발(白髮)이라는 이유로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한다.
다른 게 ‘틀린 것’은 아닌데, 우리는 자주 이 둘을 혼동한다. 나와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김치녀’ ‘한남충’이라며 상대를 비난한다.
나와 달리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병신’이라며 상대를 무시하고, 경멸한다.
나와 다른 정치 성향을 지녔다는 이유로 상대에게 ‘보수꼴통’ ‘빨갱이’라며 적대시한다.
심지어 나보다 훨씬 뛰어난 학업성적을 보이는 이에겐 “진실을 요구한다”며 그의 학벌이 위조된 것이 아니냐며 물고 늘어진다.
뮤지컬 <김홍길동: 분노는 나의 힘>이 관객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런 나와의 다름[差異]을 인정하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차별(差別)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오늘도 무심코 “여자가 말이야…” “나이도 어린 게…” “전라도 사람은…” 등 누군가를 차별하는 말을 한 적이 있다면, 꼭 이 작품을 보기 권한다.
뮤지컬 <김홍길동: 분노는 나의 힘>은 오는 13일까지 대학로 브릭스씨어터에서 공연한다. 티켓 가격은 전석 55,000원으로 장애인은 50% 할인된다. 다만, 휠체어석이 따로 없으니 참고할 것.
/디컬쳐 이경헌 기자 <저작권자 ⓒ 디컬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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