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실제로 만나도 상대를 보지 못하는 야코 입장에선 시르파를 직접 만나던, 그렇지 않던 ‘얼굴도 못 본 여자’인 건 마찬가지다.
영상통화 좀 하자는 시르파에게 그는 자신은 시르파의 얼굴을 볼 수 없으니 공평하지 않다며 자기 거부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도 모른 채 알콩달콩 사랑을 키워 나간다.
과거 눈이 보일 때 영화광이었다는 야코는 영상통화를 통해 시르파에게 자기가 소장한 영화 DVD와 비디오 테이프를 보여준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친구로부터 치료제를 쓰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야코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무려 1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그녀를 만나기 위해 홀로 집을 나선다.
하지만 걷지도, 보지도 못하는 그에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의 상태를 파악한 한 남자가 그의 돈과 전화기를 빼앗는다.
심지어 소리치거나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그냥 죽여버리겠다며 협박한다.
오직 소리에 의지해 상황을 파악해야 하는 그는 눈이 보이는 사람보다 더한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감독은 영화 내내 야코의 얼굴 혹은 눈을 클로즈업한다. 가까이에서 피사체를 클로즈업하니 자연히 주변 배경은 (아웃 포커스 때문에) 흐릿하게 보인다.
관객 역시 극 중 야코처럼 주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어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특히 야코가 열차 안에서 만난 남자에게 납치되다시피 어디론가 끌려가는 과정에서 화면에 아무것도 안 나오고 소리만 들리는 순간이 있는데 이때 대체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 수 없어 공포감은 극대화된다.
시각장애인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영화라 할 수 있다.
특히 겨우 악당에게서 벗어난 그가 탈출하는 과정에서 길거리인지 철도 위인지도 불분명한 어딘가에 넘어져 누군가 도와줄 사람을 찾는데, 그때 멀리서 개 소리가 들리자 그는 개를 유인한다.
그 개가 달려와 자신을 해칠지 아닐지도 모른 채, 개가 자기 주위에서 짖기라도 하면 누군가 나를 발견하고 도와주겠지 싶어서 말이다.
앞을 볼 수 있다면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수월할 텐데, 저 개가 나에게 도움이 될지 해가 될지도 모른 채 개한테라도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 그의 모습을 통해 시각장애인은 얼마나 많은 위험을 감수한 채 살아가는지 그리고 얼마나 힘겹게 살아가는지 느끼게 한다.
극 중 야코 역을 맡은 페트리 포이콜라이넨는 실제 다발경화증으로 시력을 잃은 배우다. 예전에 배우 생활을 했던 그가 친구인 테무 니키 감독에게 연락한 것이 계기가 돼 이 작품이 탄생했다고 한다.
다만,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를 통해 시각장애인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작품을 만들기 원했던 감독은 페트리 포이콜라이넨을 배려해 그의 연극원 동기들을 배우로 캐스팅하는 한편, 페트리에게 익숙한 곳에서 찍기 위해 그의 집에서 대부분의 장면을 촬영했다.
또, 오프닝 때 주요 스태프의 이름을 점자와 내레이션으로 처리하는 한편 엔딩 크레딧 역시 점자와 묵자를 같이 적어 관객들에게 시각장애인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한 점이 돋보인다.
영화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는 오는 10일 개봉한다.
/디컬쳐 이경헌 기자 <저작권자 ⓒ 디컬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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