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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기]‘태움’은 사라져야 할 악습

영화 <인플루엔자>

이경헌 기자 | 입력 : 2022/08/22 [17:16]


영화는 나이팅게일 선언문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곧바로 한 여성이 터벅터벅 경찰서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버스를 기다리던 한 여성이 전화를 받고 경찰서로 향한다.

 

영화 <인플루엔자>는 간호사 간의 ‘태움 문화’(영혼까지 태울 정도로 괴롭히는 것)에 대해 다루고 있다.

 

‘판토마 바이러스’로 의료진들이 지친 상황에서 제대로 신입 교육도 받지 못한 채 바로 현장에 투입된 3개월차 간호사 다솔(김다솔 분)응 제대로 일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선배들에게 구박받는다.

 

견디다 못해 수간호사(김종숙 분)에게 사표를 내지만, 수간호사는 이 바쁜 시기에 이게 뭐하는 거냐며 다른 병원에 못 가게 소문내겠다며 사표를 찢는다.

 

그런 와중에 또 신입 간호사가 들어오고, 다솔이 교육을 맡는다. 자신이 당한 게 있어서 다솔은 은비(추선우 분)에게 따뜻하게 대하다.

 

하지만, 은비의 실수 때문에 수간호사한테까지 혼나자 다솔은 인내의 한계를 느낀다.

 

밉다 밉다 하니까 이젠 단둘이 사는 동생 핑계로 일이 남았는데도 칼퇴근까지 한다.

 

결국 다솔은 그동안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은비에게 친절하게 대해줬더니, 자기를 호구로 아나 싶어 은비를 갈군다.

 

이에 은비는 직장내 괴롭힘 신고를 한다. 하지만 이 일로 더 곤란한 처지에 놓인다. 결국 은비는 극단적 선택을 한다.

 

영화 <인플루엔자>는 지금의 코로나19 상황처럼 ‘판토마 바이러스’라는 치명적 바이러스의 대유행 시기를 다루고 있다.

 

의사, 간호사 가릴 것 없이 제 할 일을 하기도 벅찬데 신입 교육까지 하려니 왜 몸이 하나일까 후회될 정도로 바쁘다.

 

당연히 교육은 부실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부족한 일손을 메우기 위해 신입 간호사가 계속 들어온다.

 

나도 제대로 배운 게 없는 ‘3개월차’ 신입 간호사인데, 남을 가르쳐야 한다니 부담이 된다.

 

아는 게 없어서 그리고 가르쳐 줄 시간이 없어서 후배 간호사 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후배 간호사는 사고를 연달아 친다. 아는 게 없으니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지만, 수간호사와 선배 간호사들은 사수에게 왜 신입 간호사 교육을 제대로 못 했느냐며 갈군다.

 

후배 때문에 내가 욕먹으니 기분이 안 좋은데, 선배들은 신입 간호사를 갈궈서라도 기강을 잡으라고 부추긴다.

 

내 바로 위 선배가 날 갈굴 땐 나중엔 난 이런 선배는 되지 않아야지 결심했지만, 막상 내가 선배의 위치에 오르니 짜증나서라도 후배를 안 갈굴 수 없다.

 

그래서 나보다 나이 많은 후배를 갈구기 시작한다. 자기가 후배지만, 언니라고 꼬박꼬박 예의를 갖춰주던 사수의 180도 달라진 모습에 신입 간호사는 혼란스럽다.

 

결국 그녀는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다. 누구는 그 정도 일로 죽으면, 세상 사람 다 죽어야 할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또 누구는 ‘비 온 뒤 땅이 더 단단해진다’는 말도 모르느냐며 조금만 더 견뎠으면 좋은 간호사가 됐을 텐데 아쉽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간호사들 사이의 ‘태움’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생명을 다루는 의료현장 일선에서 일하는 만큼 정신 바짝 차려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영혼까지 태울 정도로 갈굴 필요가 있을까 싶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말이 있다. 과거는 그런 식의 교육이 용인되고, 그것이 또 맞는다고 여겨지는 때가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은 변했다. ‘간호원’이 ‘간호사’가 되었고, 인권의 개념도 약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인권은 물론 동물권까지 소중히 여기는 시대가 됐다.

 

그런 상황에서 수간호사는 과거 자신이 선배들에게 배워 온 방식대로 후배들을 관리하고, 그 후배들은 또 자신들의 후배들을 같은 방식으로 대한다.

 

이 부당함에 맞서 사표도 내고, 직장내 괴롭힘 신고도 하지만 소용없다.

 

심지어 신고당한 이의 손에 신고서가 들어가 신고자에게 감히 이런 일을 벌였느냐며 보복이 가해진다.

 

이런 부당함을 끊을 수 있는 방법은 어쩌면 죽음뿐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나는 나중에 좋은 선배가 되어야지 결심해 봤자, 자기의 선배들이 그렇게 되도록 놓아두지 않는다.

 

내가 선배에게 당한 것처럼 그리고 네가 나한테 당한 것처럼 너도 후배에게 똑같이 갚으라고 강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악습을 대물림하지 않으려면, 내가 아예 간호사라는 직업을 관두고 재야에서 평범하게 살거나 혹은 세상에서 내가 사라지는 수밖에 없다.

 

뉴스에 심심치 않게 ‘태움’으로 인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간호사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1차적으로는 보건복지부와 국가인권위에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이 땅의 간호사들이 나서서 ‘태움 문화’를 없애야 한다.

 

사람을 죽게 만드는 직장내 괴롭힘은 더 이상 ‘문화’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 <인플루엔자>는 오는 25일 개봉한다.

 

/디컬쳐 이경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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