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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숨겨야 할 진실이 많은 사람이 책임자가 되면 벌어지는 일

영화 <괴물>

칼럼니스트 김진곤 | 입력 : 2024/01/02 [10:08]

 

초등학교 5학년인 미나토는 학교에서 담임선생이었던 호리 선생을 보자 학교 옥상으로 마구 도망간다. 옥상 문까지 쫓아온 호리 선생은 미나토에서 묻는다.

 

“왜 그랬어? 내가 너한테 뭘 했는데?”

대답하지 못하는 미나토에게 호리는 다시 묻는다. 

“아무것도 안 했잖아”

미나토는 죄책감인지 위협감으로 인한 건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호리선생은 “응 그렇지?”라고 미나토의 끄덕임의 동조를 확인했다는 듯이 대답한다. 

 

미나토는 폭력적인 아이로 오해받는 시선이 중요하지 않았다. 

 

머릿속에 가득 차 있던 생각인 “나의 뇌가 돼지 뇌가 아닐까?”라는 인간존재에 대한 고민을 엄마(사오리)에게 털어놓았을 뿐이다. 

 

사실 이 고민은 요리(미나토의 친구)의 고민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누가 그렇게 말했는지가 중요했다. 

 

추궁하는 엄마에게 요리가 아닌 호리 선생님이 했다고 말하면서 일이 일파만파 커진 것이다.

 

사실 미나토는 친구 요리의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다. 

 

미나토는 일이 이렇게 될 줄을 몰랐을 것이다. 

 

어쩌면, 호리 선생을 지목하면 (자신이 어른이라고 가장 믿는) 호리 선생이 일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는지 모른다.

 

호리 선생은 책의 오탈자를 발견하면 일일이 체크해 출판사에 교정을 요청하곤 한다. 

 

잘못되었다고 판단하면 다시금 고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넘어진 학생을 보면 일으켜 주고, 싸우는 학생을 보면 누구보다 먼저 뛰어가서 화해시키려는 따뜻한 심성을 지닌 교사였다. 

 

딱 한 번. 미쳐 날뛰는 미나토를 말리려 하다 부딪혀 미나토가 코피를 흘리게 된 일이 발생했었을 뿐이다. 이 일로 호리는 폭력 교사로 몰리게 된 것이다. 

 

호리는 어찌 되었든 결과적으로 해고를 당할지라도, 거짓 증언을 왜 했는지가 미칠 듯이 궁금했을 것이다. 

 

폭력 교사라는 의혹과 유흥업소 다니는 품행이 부정한 뜬소문까지 더해진 오해의 낙인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 옥상에서 떨어져 죽으려고 했다. 그만큼 오해 받는 것에 대하여 억울함을 견디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진실을 확인하려 도망치는 미나토를 미친 듯이 쫓은 것이다.

 

“압니다. 하지만 진실은 중요하지 않아” 

호리는 자신은 그러지 않았다고 교장에게 호소할 때, 교장이 대답한 말이다.

 

교장은 호리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이렇게 말한다. “압니다. 자네가 학교를 지키는 거야. 진실은 중요하지 않아”

 

이 말은 진실은 중요하지 않고, 자네가 학교를 위해 사죄와 사임하는 것을 선택하라는 말이었다. 교장은 이런 전체주의적인 결정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책임자인 교장은 의사결정을 해야만 했을 것이다. 애초에 분노한 부모를 달래기 위해선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라는 것이다. 

 

호리의 폭력이 사실이 아니어도 학부모인 사오리를 설득할 수 없을 것이고, 만약에 진실이 밝혀져 호리의 말이 사실이라면, 미나토가 거짓말하는 것이 된다. 

 

아이를 추궁하여 일이 외부에 크게 알려져 학교의 명예가 실추될 바에는 교사 한 사람이 고개 숙여 사과하는 편이 낫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학교를 지키는 방법으로 호리를 희생양으로 삼고, 공개 사과와 해고하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하고자 한 것이다.

 

교사 한 명을 버리면서까지 아이의 거짓말을 확인하는 일은 교장에서 왜 그토록 힘들었을까?

 

영화 속에서 사오리가 교장에게 “당신이 인간입니까”라며 말했던 것처럼 교장은 인간이 아닌 괴물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아마도 교장은 미나토의 거짓말을 알았던 거 같다. 

 

하지만 교장에게는 숨겨야 할 진실이 있었다. 

 

그것은 차로 손주를 치어 죽게 한 죄를 남편에게 뒤집어씌운 일이다. 

 

남편은 자신의 명예를 위해 대신하여 감옥에 갔고, 교장은 때때로 남편을 만나러 간다. 

 

그럴 때마다 교장은 자신이 ‘죽였다’, ‘거짓말했다’라는 커다란 죄의식으로 인해 밤마다 다리 위에 서서 죽고 싶어한다. 

 

자녀와 손주를 키웠지만, 손주를 죽게 한 감당하기 힘든 삶의 질곡을 가진 나이 든 사람으로 어린아이인 미나토와 요나가 세상으로부터 정죄 받는 것을 숨겨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영화에선 사건의 진범, 소문의 진위 어느 하나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그것이 관객이 누구를 괴물로 지목하든, 편견의 늪에 허우적거리게 하든 관객의 판단으로 맡긴다.

 

사건의 진실에 가깝게 갈수록 관객 스스로 더욱 부끄럽게 만든다. 

 

영화는 지금의 현실이 이렇다는 것을 우화적으로 보여 주기에 더 먹먹하고 더 현실적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츠 감독은 학부모-학교장-교사-학생의 관계를 통해 현 사회에서의 권력과 책임에 대한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학부모인 사오리는 아들 미나토를 학교에 맡김으로써 학교장은 학생에 대한 책임과 권한, 즉 권력을 동시에 얻는다. 

 

그 권한은 교사를 배치할 수 있는 인사권이 있으며, 또한 학생도 처벌할 학교 내에서 사법적 권한이 있다. 

 

교사는 교장으로부터 임명됨으로써 학생을 가르칠 의무를 얻음과 동시에 숙제를 내줄 수도 있으며, 처벌할 권한도 있다. 

 

학교는 확실히 사회의 축소판이다. 아이들에겐 학교가 인생의 전부인 사회인 것이다.

 

여기서, 학부모인 사오리는 자기 아들 미나토에 대한 잘못된 교육행위가 있었음을 문제 삼으며, 교사의 도덕성까지 추궁한다. 

 

교사의 잘못은 학교장이 책임져야 한다. 권력은 책임이 뒤따른다. 

 

자신이 임명한 사람에 대한 잘잘못도 책임을 져야 한다. 

 

임명한 사람을 해임할 권력도 있지만 그 책임의 최종권자는 교장이 되는 것이다. 

 

누구도 희생양을 삼아서는 안 된다. 집단을 위해 개인이 억울한 희생 되어서는 안 된다. 

 

꼬리 자르기로 도망쳐서도 안 된다. 

 

권력이 큰 만큼 직무와 책임도 크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도 안 된다.

 

2023년 한 해가 저물었다. 뒤돌아보면 책임과 권한, 의무 속에서 살아왔음을 뒤돌아보게 된다. 

 

나에게 주어진 책임을 회피하진 않았는지. 나의 그릇된 행동으로 누군가를 희생양 삼진 않았는지 뒤돌아보게 된다. 

 

2024년도에는 미나토와 요나 같은 아이들이 폐전철에 숨는 것이 아닌, 거짓 없이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사회가 되길 기대해 본다.

 

/디컬쳐 칼럼니스트 김진곤(영화감독)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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