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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日, 속죄의 방법 히라야마에게 배우길

영화 <퍼펙트 데이즈>

칼럼니스트 김진곤 | 입력 : 2024/07/11 [14:25]


60대로 보이는 히라야마(야쿠쇼 코지 분)는 도쿄 시부야의 공공화장실 청소부다. 그는 시계처럼 매일 같은 루틴으로 살아간다. 

 

매일 정성스럽게 화장실 변기를 정성스럽게 닦는 히라야마의 모습은 흡사 수도자의 속죄 행위처럼 느끼는 것은 나만 그런 것일까. 

 

지난 3일에 개봉한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지난해 열린 제76회 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과 에큐메니컬상을 수상하며 극찬을 받은 작품이다. 

 

일본영화이지만, 감독은 <파리,텍사스>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바 있는 빔 벤더스 감독 작품이다.

 

영화 속 히라야마는 말이 없다. 빔 벤더스 감독의 1984년작 <파리, 텍사스>의 트래비스처럼 말이다. 

 

<파리, 텍사스>에서의 트래비스가 영화 속에서 말이 없는 이유를 감독은 특별히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텍사스 사막에서 힘든 여정으로 실어증이 생겼을 거라 구호소 의사가 추정하여 설명할 뿐이다. 

 

트래비스는 동생을 만남으로써 서서히 말을 하기 시작한다. 이는 그가 동생과 함께 하면서 가족의 상처가 회복되어 감을 표현한다.

 

 그러나 <퍼펙트 데이즈> 히라야마는 트래비스와 다르다. 그는 말을 절제하고 주변의 소리에 귀기울인다. 

 

도심 공원의 바람 소리, 사람 소리. 같이 일하는 동료하고도 꼭 해야 할 말만 한다. 

 

그리고 본다. 나뭇잎 사이로 내리치는 햇빛의 일렁임. 거대한 나무 아래 흙 속에 작게 움튼 싹, 자연과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을 관조(觀照)한다. 

 

그렇다. 이 영화는 어떤 반전이 있는 스토리로, 무슨 액션으로, 억지로 웃기려는 어떠한 것도 시도하지 않는다. 이 영화의 매력은 히라야마를 보는 것으로, 히라야마가 보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영화이다. 그런 영화다.

 

새벽녘. 히라야마는 창밖에서 들리는 청소하는 빗자루 소리에 눈을 뜬다. 그리곤 바로 일어나 이불을 갠다. 

 

60대가 잠에서 깨고 바로 일어날 수 있다는 건 몸이 건강하다는 걸 보여준다. 

 

그리고 씻고는 화분에 물을 준다. 자신의 아침 식사보다 꽃의 목마름이 더 중요한 인물이다. 

 

히라야마의 아침 일상으로 그가 얼마나 몸과 마음이 건강한지를 보여준다.

 


차 열쇠를 챙기고 문밖으로 나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하늘을 보는 것이다. 

 

하늘을 보고 호흡을 내쉰다. 오늘 자신의 하루를 하늘에 맡기듯이, 아니 자연 속에 스며드는 인간이길 바라는 듯하다. 

 

드디어 집 앞의 자판기 커피 한 잔으로 아침 몸을 깨운다. 차 시동을 걸고, 카세트 테이프를 넣고 음악을 튼다. 

 

카세트 테이프 음악이어야 한다. 1960~70년대의 팝 음악은 그렇게 들어야 한다. 

 

히라야마의 행동엔 매일 반복된 루틴이기에 거침이 없다. 공원에 도착하면 청소용품을 꺼내  들고 공공화장실에 들어가 청소를 시작한다. 

 

변기에 약품을 뿌리곤  낮은 자세로 앉아 구석구석을 청소한다. 경건함마저 들게 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고인이 된 시체에 염하는 모습과 같다. 

 

무심코 넘길 하잖게 여길만한 일을 히라야마가 성심을 다하는 모습에 번쩍 경각심, 경외심을 일깨운다. 

 

노년기에 접어든 히라야마는 왜 이런 삶을 살고 있을까? 

 

동트기전 푸른 새벽녘에 히라야마의 차 시동소리와 헤드라이트 불빛이 좁은 골목길을 밝힌다. 

 

히라야마 차 위로 간간히 들리는 까마귀소리. 한적한 출근 도로. 사연이 있는 듯한 히라야마의 표정. 그리고 들리는 카세트 테이프의 음악소리. 

 

히라야마가 출퇴근하며 듣는 음악은 빈 벤더스 감독이 직접 골랐다기에, 음악을 통해 히라야마의 과거를 추정해 본다. 

 

이 영화에서 첫 번째 나오는 음악은 영국밴드 애니멀스가 부른 <하우스 오브 라이징 썬 ; House of the Rising Sun>이다. 

 

이 노래의 첫 가사는 이렇다. 

‘뉴올리스에 일출(Rising Sun)이라는 집이 하나 있지

수많은 불쌍한 이가 인생을 망친 곳. 나도 그중 하나겠지.‘

 

이 노래는 현세대의 잘못을 비판하고 다음세대는 이렇게 살지 말라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노래다. 

 

극 중 히라야마(배우 야쿠쇼 코지는 실제 1956년생이다)는 일본 전후, 패망 직후 태어난 세대로 자신의 과거에 대한 후회와 성찰하는 인물로 보인다. 

 

그는 가장 더러운 곳을 깨끗이 구석구석 닦는 화장실 청소부로 성심을 다한다. 

 

뒤늦게 출근한 히라야마의 동료이자 젊은 청년은 “아침 청소는 최악이에요. 토할 것 같다니까요. 전날 나나고도리 공원화장실처럼요. 악몽이었잖아요. 누구도 살아나올 수 없었을 거에요”라고 말한다. 

 

지난 밤 누가 화장실을 지저분하게 했는지를 알 수 없듯이 일본 전(前) 세대의 전쟁과 만행들에 대하여 ‘공중화장실’이라는 공간을 통해 메타포한다. 

 

젊은이들은 자신의 세대가 왜 이를 감당해야 하는 지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는다. 

 

“히라야마 씨, 대충하세요. 어차피 더러워질 거‘

 

공공 화장실이고, 남녀노소 가릴 거 없이 많이 사람들이 지나간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이곳을 히라야마는 묵묵히 청소한다. 모든 죄를 짊어진 예수처럼. 

 

히라야마 자신도 그 노랫말처럼 속죄를 해야 할 죄를 지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렇게 그 모습이 참회하는 듯해 보였고, 경건해 보였는지 모른다.

 

퇴근하며 히라야마는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페일 블루 아이즈; Pale Blus Eyes>을 듣는다. 

 

차분하고, 편안하고, 자장가같은 이 노래는 이미 남편이 있는 한 여자와 사랑에 빠졌고, 상대를 자신의 반쪽이라 여기며 사회적으로 옳지 않다는 걸 알고 있지만 한 번 더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하여 후회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히라야마가 잘못된 사랑의 죄를 저지른 것일까. 아니면 가족, 부모의 불륜이 자신의 상처가 되었던 것일까.

 

히라야마는 이부자리에서 꾸벅꾸벅 눈이 감기기 전까지 윌리엄 포크너의 <야생종려나무>(The Wild Palm)를 읽는다. 

 

이쯤 되면, 히라야마의 과거의 일들을 좀 더 확실히 짐작하게 된다. 

 

<야생종려나무>은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노벨문학상의 작가 윌리엄 포크너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개인과 사회의 관계, 갈등을 통해 인간 보편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야생종려나무에서 등장하는 샬롯이라는 인물은 남편과 아이를 버리고 해리와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이다가 종국에는 낙태수술 휴유증으로 사망하게 된다. 

 

같이 사랑 행각을 벌인 해리는 외과의사를 꿈꾸던 인턴으로 샬롯을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결혼제도의 가치를 위반했다는 죄목으로 50년형을 선고받게 된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영화의 앞부분인 30분 정도 분량에 해당한다. 영화가 이만큼 진행되는 동안에도 히라야마는 한마디로 하지 않고도 수많은 이야기를 쏟아낸다. 

 

빔 벤더스 감독을 이 영화를 4:3 비율로 만들었다. 4:3비율을 영화 스크린 비율이 아닌 예전 TV 브라운관시대의 비율이다. 

 

요즘 와이드 스크린방식인 1.85:1이나 2.35:1에 비하여 화면이 훨씬 좁고, 위아래를 비율적으로 많이 담을 수 있다. 

 

그렇기에 세로로 긴 사람의 모습이나 건물, 집을 담아내는 데에는 와이드 비율보다는 더 유리한 면이 있다. 사람을 사람답게 건물을 건물답게 보여줄 수 있다.

 

감독은 비율을 이렇게 정하고 히라야마의 모습을 아주 가까이서 근접하여 화면을 꽉 채우는 방식으로 촬영했다. 

 

그래서 좁은 공간인 화장실에서의 청소하는 모습을 효과적으로 촬영하였으며,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인물의 감정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게 했다. 

 

그러한 촬영 때문인지 관객은 금방 히라야마에 집중할 수 있고, 아무 말 없이 행동하는 그 인물의 많은 이야기를 느낄 수가 있다.

 

영화는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히라야마를 보여주지만, 그가 매일 잠들어 꾸는 꿈을 매번 바뀐다.

 

그가 꾸는 꿈은 하루 동안 봤던 사람들의 이미지이기도 하며 그 속의 알 수 없는 상처 같은 것들이 얽히고 설켜 나타난다. 

 

히라야마는 매일 그렇게 살아내고 있었다. 히라야마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는 정말 많은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달 해준다. 

 

이 영화가 얼마나 미학적으로 얼마나 탁월한지를 보여준다.

 

영화는 도쿄의 해 뜨는 아침과 해 지는 저녁, 도쿄의 비 오는 아름다운 거리, 햇빛이 나뭇잎과 건물을 통과하는 산산이 부서져 내리는 햇살이 아름답게 표현된다. 

 

이 영화를 보고 있자면 도쿄의 건물, 공공화장실마저 건축적으로 기하학적으로 도쿄가 얼마나 멋진지 감상할 수 있다. 

 

2차세계대전의 범죄를 저질렀던 독일과 일본. 독일인 빔 벤더스 감독과 일본 청소부 히라야마를 통하여 참회와 속죄의 행위는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해야만 한다는 것을 <퍼펙트 데이즈>를 통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무릇 독일과 일본에 국한해서는 안 되겠지만 말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노래인 니나시몬(Nina Simone)의 <필링굿>(Feeling good)의 가사를 통해 새로운 날, 새로운 인생, 완벽한 날(Perfect Days)로 인생을 수놓고 싶어진다.

 

높이 나는 새들. 내 기분이 어떤지 알잖아.

하늘에 태양. 내 기분이 어떤지 알잖아.

바람이 불어와. 내 기분이 어떤지 알잖아.

새로운 새벽이다. 새로운 날이다.

새로운 인생이에요. 나를 위한

<중략>

하루가 끝나면 편히 잠드세요, 그게 내 말이에요.

그리고 이 낡은 세상은 새로운 세상이다.

그리고 대담한 세상. 나를 위한

당신이 빛날 때 별. 내 기분이 어떤지 알잖아.

아, 자유는 나의 것. 난 내 기분이 어떤지 알아요.

새로운 새벽이다. 새로운 날이다.

새로운 인생이에요. 나를 위한

기분이 너무 좋아. 기분이 너무 좋아.

I feel so good.

 

/디컬쳐 칼럼니스트 김진곤(영화감독)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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