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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기]난민 배달 노동자의 현실 그려

영화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

박선영 기자 | 기사입력 2026/06/16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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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기]난민 배달 노동자의 현실 그려
영화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
기사입력  2026/06/16 [09:50]   박선영 기자


매일 밤, 우리가 스마트폰 액정을 몇 번 두드리는 것만으로 따뜻한 음식이 문 앞에 도착한다.

 

액정 화면 속 인터페이스는 명쾌하다. ‘조리 대기 중입니다’, ‘라이더가 이동 중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픽셀 뒤에 숨은 진짜 인간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 아니, 어쩌면 보려고 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오는 17일 개봉하는 영화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은 우리가 외면해 왔던 배달앱 화면 뒤의 유령 같은 삶을 스크린 전면에 거칠게 밀어 넣는 작품이다.

 

<제77회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심사위원상과 남우주연상을 거머쥐며 전 세계적인 찬사를 받은 이 영화는, 낭만의 도시 파리를 배경으로 하되 그 어떤 액션 스릴러보다 숨 막히는 긴장감을 선사한다.

 

주인공 술레이만(아부 상가레 분)은 서아프리카 기니의 정치적·경제적 파탄을 피해 프랑스로 도망쳐 온 난민 신청자다.

 

그에게는 합법적인 체류 증명이 없다. 이 때문에 타인의 배달앱 계정을 매달 비싼 수수료를 주고 빌려 쓰며 파리의 거리를 달리는 ‘미등록 이주 노동자’ 신세다.

 

영화는 술레이만의 운명을 가를 ‘망명 심사 면접’을 이틀 앞둔 시점부터 시작된다. 합법적 거주권을 얻기 위해서는 난민 브로커가 짜준 ‘거짓 스토리’와 위조 서류가 필수적이지만, 브로커는 돈을 주지 않으면 서류를 넘겨주지 않겠다며 그를 협박한다.

 

한푼이 아쉽고 1분 1초가 급한 술레이만에게 파리의 거리는 유독 가혹하다.

 

서류 값을 벌기 위해 자전거 페달을 밟고 또 밟지만, 도로 위에서 예기치 못한 자동차 추돌 사고를 당하고 배달 간 매장에서는 부당한 처우를 받는다.

 

까다로운 고객과의 불화까지 겹치며 그의 하루는 엉망으로 뒤엉킨다.

 

설상가상으로 배달앱 알고리즘은 불시에 ‘본인 인증(안면 인식)’ 알람을 울려대며 명의 도용자인 그의 숨통을 조여오고, 결국 앱마저 정지당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다.

 

설 자리를 잃은 그를 향해 배달앱 계정을 빌려준 원주인은 도리어 돈을 뜯어내며 막다른 골목으로 밀어 넣는다.

 

카메라는 시종일관 술레이만의 등 뒤와 흔들리는 눈빛을 바짝 추격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그가 느끼는 극도의 피로감과 압박감을 고스란히 공유하게 만든다.

 

이 영화의 백미는 후반부 20여 분간 이어지는 프랑스 난민·무국적자 보호청(OFPRA)에서의 면접 장면이다.

 

여기서 영화는 난민 심사 제도의 서글픈 모순을 날카롭게 폭로한다. 현실의 시스템은 진짜 비극을 겪은 사람보다 면접관이 믿을 만한 매끄러운 스토리를 짜온 사람에게 더 유리하게 작용한다.

 

살아남기 위해 고향에 둔 아픈 어머니의 이야기 대신 브로커가 주입한 정치적 박해 시나리오를 달달 외워야 하는 술레이만의 모습은 서글픈 아이러니다.

 

하지만 면접관의 집요한 추궁 속에 외워둔 거짓말은 들통나고, 마침내 “당신의 진짜 이야기를 하라”는 질문이 떨어지는 순간, 영화는 밀도 높은 극적 몰입감을 선사한다.

 

영화는 친절한 해피엔딩도, 참혹한 배드엔딩도 선택하지 않는다.  면접실 문을 열고 나온 술레이만에게 남은 것은 홀가분함이 아니라, 언제 올지 모르는 결과를 담은 우편물을 기다려야 하는 더 잔인하고 피 말리는 불안이다.

 

영화의 막은 내렸지만 술레이만의 삶과 긴장감은 끝나지 않은 채 스크린 너머 현실로 이어진다.

 

특히 놀라운 점은 주인공을 맡은 배우 아부 상가레가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실제 기니 출신의 미등록 이주 노동자였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이후에도 프랑스 당국으로부터 체류증 발급을 거부당했던 그의 현실은 이 영화가 단순한 픽션이 아님을 증명한다.

 

영화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은 멀리 있는 국제 뉴스의 한 대목이 아니다.

 

오늘 밤, 당신의 집 문을 두드리는 라이더 역시 내일 아침 우체통을 확인하며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또 다른 술레이만일지 모른다.

 

편리함이라는 혜택 뒤에 가려진 미등록 이주 노동자의 가혹한 현실, 그리고 난민 심사 제도의 서글픈 모순을 향해 이 영화는 묵직하고도 날카로운 질문을 우리 사회에 배달한다.

 

/디컬쳐 박선영 기자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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