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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나홍진의 ‘호프’가 증명한 것

영화 <호프>

칼럼니스트 김진곤 | 기사입력 2026/07/09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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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나홍진의 ‘호프’가 증명한 것
영화 <호프>
기사입력  2026/07/09 [12:15]   칼럼니스트 김진곤

 

오늘날 소파에 앉아 TV로 스트리밍 드라마를 보고,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으로 쇼츠나 유튜브를 보면서 착각에 빠지기 쉽다. 기술의 발전이 극장이라는 공간의 경계를 지워버렸다고, 이제 스크린의 유일한 영토는 ‘크기’의 차이뿐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미디어 플랫폼의 홍수 속에서 여전히 독점해야 하는 본질이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시각적 거대함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현실에 없는 세계를 온몸으로 감각하게 만드는 신체적 체험’이다.

 

나홍진 감독의  <호프>(HOPE)는 바로 이 지점, TV가 도달할 수 없는 ‘스크린의 권능’이 어디에 있는지를 야만적이고 날 것의 에너지로 보여준다.

 

프레임에 갇히기를 거부하는 ‘날 것의 에너지’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안방의 미디어 환경은 관객에게 ‘안전함’을 매개로 한다. 정형화된 플롯, 예측 가능한 템포. 1.5배속으로 돌려봐도 무리가 없는 친절한 서사 구조는 안방 관객들을 안락한 감상자로 머물게 한다.

 

그러나 나홍진 감독이 스크린 위에 구현하는 미지의 세계는 관객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시선을 거둘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호포항이라는 고립된 공간에 정체불명의 생명체가 들이닥친 후, <호프>는 미스터리 스릴러로 초반 30분 동안 관객을 숨도 못 쉬게 만든다. 

 

30분마다 하나의 장르가 추가되며 크리처, 에일리언 SF, 자동차와 말과 괴물이 뒤엉키는 광기의 에너지를 날것 그대로 스크린에 쏟아붓는다. 이는 안방의 스트리밍 서비스의 프레임 안에는 도저히 담기지 않는, 오직 극장의 어둠 속에서 압도적인 음향과 빛으로 마비되어야만 온전히 체화되는 ‘물리적 체험’의 영역이다. 

 

미지(未知)를 탐구하는 지독한 파라독스

 

나홍진의 영화는 언제나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악과 불행’에 있다. <추격자>의 연쇄 살인범이 그랬고, <황해>의 척박한 땅이나 <곡성>의 기괴한 의식과 사건 현상에서 보았다. <호프>는 아예 그 대상을 논리와 언어가 통하지 않는 지구 밖의 존재를 등장시킴으로써 궁극의 ‘미지’로 확장했다.

 

감독은 존재하지 않는 세계와 생명체에 대항하는 지구인을 할리우드식의 세련된 SF로 표현하지 않았다. 고립된 한 마을의 주민들이 집단 편집증에 걸려 각자도생하기 위해 재래식 무기로 들고 우왕좌왕하는 ‘지옥도’를 보여준다. 

 

감독이 탐구하는 세계는 가상의 외계인이 아니라 거대한 미증유의 미끼를 던졌을 때 비로소 바닥까지 드러나는 인간 사회의 추악한 본성과 무력함이다. 

 

해석이라는 복수, 나홍진이 던진 ‘미끼’

 

수전 손택은 에세이 <해석의 반하여>에서 ‘해석은 지식인이 예술에 가하는 복수다. 예술을 해석한다는 것은 예술 작품을 내용으로 걸러내고 그렇게 걸러낸 내용에 따라 작품을 평가하는 행위다. 해석은 세계를 빈곤하게 만든다’라고 말했다. 

 

손택이 보기에 해석은 예술이 가진 날 것의 마력과 관능을 거세하고, 그것을 안전하고 고분고분한 개념으로 가두려는 지적 폭력이라는 것이었다.

 

흥미롭게도 나홍진 감독은 전작 <곡성>에서부터 이러한 평단과 관객의 ‘해석 강박’을 조롱하듯 연출했다. 스크린 가득 온갖 종교적 상징, 미학적 은유를 흩뿌려 놓았지만 정작 영화에서 “그놈은 미끼를 던진 것이여, 자네 딸은 그 미끼를 확 물어 분 것이고”라는 말처럼 관객은 미끼를 문 것뿐이다. 

 

<호프>는 호포항에 외계 생명체가 추락한다는 설정 자체부터가 장르적 클리셰(진부한 공식)의 덩어리이다. 감독은 평론가들의 해석이 시작되기도 전에, 영화의 톤과 장르를 사정없이 박살 내며 질주한다. 

 

미스터리에서 B급 괴수물로, SF로 이어지는가 하면 크리처와 카 체이스로 이어지는 폭주 속에서 평론가들이 쌓아 올리던 '해석의 탑'은 사정없이 무너진다. 

 

영화가 끝날 때야 나홍진 감독이 던진 ‘미끼’였음을 알게 된다.

 

외신들이 <호프> 후반부를 두고 던진 “주브나일 B급 소동극(juvenile B-movie farce)”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주브나일(juvenile)은 ‘어린애 같은’ ‘유치한’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영화에서 주브나일이라고 할 때는 ‘10대 청소년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모험을 떠나거나, 어른들은 모르는 미지의 존재(외계인, 괴물 등)에 맞서 싸우는 장르’를 통칭한다. 

 

그래서 ‘주브나일 B급 소동극’이라는 말은 거장의 묵직한 예술영화가 아니라, 철없는 청소년들이 외계 괴물과 한바탕 유치하게 치고받는 싸구려 오락영화 같다며 말한 것이다.

 

 

감독은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가지고 할리우드식의 매끄럽고 지적인 SF를 만들지 않았다. 대신 투박하고 거칠며, 때론 유치하기까지 한 클래식 괴수물의 난장판을 선택했다. 

 

그리고 조인성이 연기한 인물이 말을 타고 괴물과 자동차를 추격하는 압도적인 장면은 이성적인 플롯으로 설명되는 영역이 아니었다. 

 

의미의 서랍에 갇히기를 거부하고 이 미친 에너지를 경험하게 만들었다. ‘이 영화가 무엇을 뜻하는지 분석하려 하지 말고,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 스펙터클의 무자비한 속도와 소음을 온몸으로 받아보라’고 들이민다.

 

예술에 대한 서술이 아니라, 예술에 대한 에로티시즘

 

여기서 말하는 에로티시즘은 선정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작품의 피부와 관객의 감각이 부딪히는 감각적이고 신체적인 접촉을 의미한다. 나홍진의 <호프>는 확실히 ‘에로티시즘’(감각적 접촉)의 영화였다. 

 

TV와 스마트폰 스트리밍 환경은 언제든 멈출 수 있고, 뒤로 돌려볼 수 있으며, 댓글 창을 열어 타인의 생각을 주워 먹을 수 있다. 이러한 손안의 스크린은 감각을 무디게 만들고 타인의 해석이 내 것인 양 착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극장의 어둠 속에서 마주하는 <호프>는 거대한 화면과 거친 숨소리, 몸을 옥죄어오는 감각, 눅눅한 공기와 먼지, 괴물의 포효가 흔드는 진동은 관객의 척수를, 감각을 타격한다. 

 

영화의 서사적 완결성이 어떠했는가를 따지기 전에,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신체적 피로감과 아드레날린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극장을 나오면서 <호프>는 영화가 여전히 극장에서 경험되어야 하는 이유를 되묻게 될 것이다.

 

/디컬쳐 칼럼니스트 김진곤(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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