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극 <섬: 1933~2019>가 지난 22일 세 번째 시즌으로 돌아왔다.
보통의 뮤지컬이 화려한 춤과 노래가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면, 이 작품은 ‘음악이 있는 연극’에 가깝다.
대사까지 노래로 읊는 뮤지컬과 달리 이 작품은 연극처럼 또박또박 대사를 내뱉는다. 수 천개의 화려한 LED 패널로 휘황찬란한 무대를 꾸미는 요즘의 뮤지컬과 달리, 붕대를 형상화한 고정된 무대 위에서 극이 진행된다.
뮤지컬에서 음악은 주인공의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이지만, 이 작품에서 음악은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설명해 주는 도구로 활용된다.
그래서 굳이 이 작품을 ‘뮤지컬’이 아닌 ‘음악극’으로 부르는 것이다.
이 작품은 1933년과 1966년의 소록도와 2019년의 현재를 보여준다. 1966년 소록도의 이야기로 시작해 세 시대가 교차하며 상연(上演) 된다.
1966년 자원봉사자 신분으로 소록도에 온 간호사 마가렛과 마리안느는 한센병(당시엔 문둥병이라고 불렀지만, 극에선 공식 용어인 한센병으로 부른다.) 환자들을 위해 헌신한다.
자원봉사자 신분이라 월급도 없이 외국에서 보내주는 소정의 수고료 정도만 받았지만, 이들은 이 비용마저 한센인을 위해 사용했을 정도로 자신의 모든 걸 내어줬다.
그리고 시간이 2019년. 공연장에서 매니저로 일하는 고지선이라는 여성이 자폐장애인의 엄마가 된 후, 겪게 되는 고충을 보여준다.
지난번 한 발달장애인이 공연 도중 소리를 질렀을 때, 그 아이 엄마에게 눈으로 레이저를 쏘아대며 아이를 공연장 밖으로 내쫓았던 그녀는, 정작 자기 아이가 공공장소에서 돌발행동을 일삼자 힘들어한다.
당연히 나와 상관없다고 여겼던 장애인이라는 존재가 이젠 나와 관련된 존재가 되면서 겪게 되는 일 가운데 늘 남에게 미안하고, 고맙고, 죄인 같은 기분 속에 살아간다.
그런 가운데 가까운데 학교가 없어서 왕복 3~4시간씩 학교에 다녀야 하는 현실 때문에 집 근처에 특수학교가 지어지길 간절히 바라는 장애학생의 부모들은 “다른 데 지으라”며 극렬히 반대하는 이들에게 읍소(泣訴)도 해 보지만 녹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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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중 한센인 자녀(왼쪽)와 부모(오른쪽)가 서로 떨어져 바라보며 잠깐 동안의 면회를 하고 있다. / 국립정동극장&라이브러리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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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마치 1933년의 소록도의 모습과 닮았다. 한센병이 옮는 병도 아닌데, 단지 한센인이라는 이유로 소록도에 가두고, 결혼을 원하는 한센인은 거세(去勢)하고, 한센인 사이에 태어난 자녀를 한센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부모와 격리해 살게 하던 그 소록도 말이다.
지금은 한센인에 대해 ‘문둥병자’가 아닌 ‘한센인’으로 부를 정도로 인식이 달라졌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에는 여전히 제2, 제3의 소록도가 존재한다.
장애라는 것이 공기 중으로 전염되거나 하는 것도 아닌데, 단지 장애인이 다니는 학교가 우리 집 앞에 생기는 것이 싫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심지어 극에 등장한 2019년의 사건은 2017년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김성태 의원이 주도해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 건립에 반대한 사건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
한국노총 사무총장 출신인 국회의원이 약자의 편에 서기를 포기하고, 님비(NIMBY)를 주도했다는 점에서 당시 논란이 됐다.
제아무리 약자를 위해 노동운동을 했던, 국정을 이끌어가는 국회의원 나리이든 상관없이 “우리 동네에 특수학교는 안 된다”며 주민을 선동하는 현실을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엔 여전히 ‘소록도’가 존재한다.
이 작품은 그런 현실을 잘 보여준다. 그래서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웃다가 눈물 나는 작품이 아닌, 작품 속 주인공들이 안타까워 눈물 흘리게 된다.
특히 천사의 노랫소리처럼 들리는 마지막 곡을 듣고 있노라면, 감정이 북돋아 올라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다만, 아쉬운 점이 한 가지 있다면 계단의 경사가 가파른 탓에 몸이 불편한 관객의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것인데, 작품 내용상 몸이 불편한 관객이 많이 올 수도 있는데 장소 선정에 있어 조금 더 세심함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음악극 <섬: 1933~2019>는 11월 22일까지 국립정동극장에서 공연한다.
/디컬쳐 이경헌 기자 c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