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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석침총 모습 /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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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은 1909년 일제가 조사한 신라 돌방무덤인 서악동 석침총(石枕塚)을 117년 만에 다시 발굴한다.
석침총이라는 이름은 무덤 안에서 ‘석침(돌베개)’이 발견된 데서 비롯되었다.
1909년 조사에서는 돌방과 시상(屍床), 석침 등이 확인되었지만, 당시의 조사 기술과 기록 방식에는 한계가 있었으며 정식 발굴보고서도 발간되지 않았다.
현재 우리가 석침총을 이해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자료 역시 당시 작성된 일부 도면과 사진 및 간단한 보고문 등에 한정되어 있다.
이번 재발굴의 목적은 단순히 이미 발굴한 무덤을 다시 파보는 데 있지 않다.
117년 전 조사된 신라 고분에 대한 지식을 오늘의 한국 고고학이 직접 확인하고 검증하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117년이라는 시간 동안 고고학의 조사 방법은 크게 달라졌다. 이번 조사에서는 전통적인 발굴뿐 아니라 광복 이후 크게 발전한 자연과학적 분석 방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돌방 바닥 토양과 돌방 벽에 발린 석회, 돌방을 만든 석재에 대한 과학적 분석 등을 통해 육안 관찰만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무덤 축조와 사용 과정에 관한 정보를 확보할 계획이다.
1909년 조사 당시에는 무덤 내부 유물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오늘날 고고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봉분의 축조 과정, 돌방과 봉분의 관계, 무덤길(묘도/墓道)과 무덤 둘레돌(호석/護石) 구조, 무덤이 만들어지고 행해진 제사 흔적 등을 충분히 확인하지 않았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이번 재발굴에서 기존 기록과 실제 유구를 정밀하게 대조하여 1909년 일제 조사자가 확인하지 못했거나 기록으로 남기지 못했던 흔적을 찾아낼 계획이다.
서악동 석침총 재발굴은 하나의 무덤에 대한 조사에 그치지 않는다. 석침총이 위치한 경주 서악동 고분군은 신라 태종무열왕릉을 비롯한 대형 고분들이 집중된 신라사 연구의 핵심 지역이다.
그러나 그 중요성에 비해 광복 이후 체계적인 발굴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아, 서악동 고분군의 조성 시기와 성격, 각 고분의 관계를 밝히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이번 조사는 이러한 연구의 공백을 메우는 첫걸음이다. 석침총의 구조와 연대를 정확하게 밝히고 주변 고분과 비교함으로써, 신라가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에서 돌방무덤으로 장례 방식을 변화시켜 가던 과정과 서악동 고분군의 역사적 성격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기초자료가 되기를 기대된다.
국립경주박물관 김대환 학예연구관은 “석침총 재발굴의 목적은 1909년의 조사를 단순히 재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조사 성과와 한계를 넘어 광복 이후 우리가 축적한 신라 고고학의 연구 성과와 과학적 분석 기술을 바탕으로 다시 검증하는 데 있다”며 “일제강점기의 신라 고분 연구를 오늘의 시각에서 다시 살펴보고, 서악동 고분군과 신라 돌방무덤 연구의 새로운 출발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디컬쳐 이경헌 기자 c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