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작품이 가진 힘은 시간이 흘러도 강건하게 있지만 그 안에 변화와 진보를 가미하기엔 많은 용기와 재능이 필요하다. 대학로 명품극단 ‘극단76’에서 연출가 기국서의 연출 인생 5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으로 <기국서의 햄릿>을 재공연한다. 특별히 이번에는 극단76를 대표하는, 배우 서민균이 기국서 연출가와 함께 공동연출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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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기국서의 햄릿> 공동연출을 맡은 서민균 / 극단76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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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안녕하세요 서민균 연출님, 먼저 자유롭게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A. 무대라는 거친 흙바닥 위에서 숨 쉬는 것이 가장 황홀한 극단76의 배우이자, 이번엔 조심스레 연출이라는 무거운 직함을 얹게 된 서민균입니다. 학창 시절 우연히 접한 연극의 강렬한 에너지에 매료되어 1993년 처음 무대에 발을 디딘 이후로 어느덧 3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네요.
배우로서 늘 관객과 뜨겁게 호흡해 왔고, 여러 매체를 통해서도 대중과 만나왔습니다. 제게 무대는 단순히 연기를 하는 공간이 아니라, 삶의 가장 정직한 민낯을 마주하는 곳입니다.
이번에는 <기국서의 햄릿>을 통해 오랜 시간 몸담아온 연극계에 또 다른 방식으로 보탬이 되고자 합니다.
Q. 이번엔 배우가 아닌 <기국서의 햄릿>에서 공동 연출직을 맡으셨는데, 연출자로서 작품 소개와 관극 포인트를 말씀해 주시죠.
A. 먼저 <기국서의 햄릿>은 고전의 박제된 햄릿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해체되고 부딪히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날 선 자화상으로, 극단 76의 창단과 기국서 연출님의 연극 인생 50주년을 기념하는 헌정 공연입니다.
관극 포인트는 '공간의 입체성'과 '가면의 해체'입니다. 무대 디자인부터 T자형의 입체적인 덧마루 구성을 활용해 배우들의 에너지를 객석 끝까지 뿜어내도록 설계했습니다.
또한, 극 중 거트루트나 오필리어 같은 인물들이 고전의 틀을 깨고 나와 '배우 본인의 실제 이야기'나 '현대적인 날것의 언어'로 관객에게 직접 질문을 던지는 메타 연극적 장치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웅장한 대극장을 가득 채우는 날카로운 긴장감과 뜻밖의 위트를 동시에 경험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Q. 길고 긴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서민균 배우'가 이번엔 연출로 참여하게 된 계기를 듣고 싶은데요, 함께 하신 기국서 연출님과의 호흡은 어떠셨나요?
A. 배우로서 기국서 연출님의 우주를 동경해 왔다면, 공동연출로서는 그 거대한 우주에 새로운 은하수 하나를 보태는 심정이었습니다.
저는 오랜 시간 배우로 살며 늘 '무대 전체를 바라보는 눈'에 대한 갈증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본을 치열하게 분석하고 각색하는 과정에서, 인물들의 숨겨진 이면을 무대 위에 더 직접적으로 그려보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죠.
특히 대한민국 연극사의 거목이신 기국서 연출님과 공동으로 각색과 연출을 맡게 된 것은 제 인생 가장 큰 영광이자 도전이었습니다.
선생님의 타협 없는 실험 정신과 묵직한 연극적 뚝심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매 순간이 배움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닦아놓으신 단단한 뼈대 위에, 제가 가진 현대적인 감각과 배우들의 감정을 섬세하게 조율하는 살을 붙여나가는 작업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짜릿한 연극적 동업이었습니다.
선생님과 공동연출은 2년 전 <관객모독>과 작년 <엔드게임>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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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기국서의 햄릿> 리허설 중인 배우들 / 극단76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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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캐스팅한 배우들 소개와 연습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A. 최고의 전사들을 모았다고 자부합니다. 매 연습실이 불꽃 튀는 전쟁터이자 뜨거운 축제였습니다. 특히 이번 캐스팅은 정말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무대를 장악할 수 있는 내공을 가진 배우들이 필요했죠. 그러면서 날것의 에너지를 뿜어내는 배우를 찾고 있었습니다.
기억나는 에피소드로는 오필리어의 캐스팅 과정이 있네요. 제가 그때 <황금용>이라는 연극을 공연하고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공연을 보러 오셔서 저의 대한 이야기는 안 하시고 베트남 꼬마 역할을 했던 김성은 배우를 찾더라고요.
김성은 배우는 우리가 잘 아는 순풍 산부인과에서 미달이 역으로 알려진 배우죠. 무대에서 단단하고 투명한 모습을 보시고 오필리어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저 보러오신 거 아니에요?”라며 농담을 했죠. 연습 초반에 오필리어라는 인물을 고전에 있는 모습이 아닌 현재 MZ스러운 소녀의 대사를 써가면서 소녀의 감성을 많이 고민했던 기억이 납니다.
Q. 30년 넘게 몸담은 대학로의 중견 예술인으로서, 서민균에게 연극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더불어 앞으로의 행보와 예술계에 바라는 점도 말씀해 주세요.
A. 제게 연극은 삶의 '진짜 냄새'를 맡게 해주는 유일한 통로이자, 제 심장의 가장 정직한 고동 소리입니다. 33년 동안 대학로라는 치열한 삶의 터전에서 버틸 수 있었던 건, 무대 위에서만큼은 그 어떤 거짓도 통하지 않는다는 '연극의 정직함' 때문이었습니다.
연극은 시대를 비추는 가장 거칠고도 아름다운 거울입니다.
이번 공연을 마치고 나면, 저는 다시 배우로서, 또 기회가 된다면 창작자로서 끊임없이 경계를 넘나들며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우선 저희 극단 50주년 기념 공연으로 <리어의 역>과 <관객모독>이 이어집니다. 여기서도 연출을 맡았습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공연계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자본과 상업성 논리에 밀려 연극이 가진 본연의 '날카로운 질문'과 '실험 정신'이 무뎌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극단 76이 50년 동안 그래왔듯, 젊은 예술가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거칠고 단단한 흙바닥이 계속해서 지켜지기를 소망합니다.
Q. 끝으로 관객들과 감사한 분들께 마무리 인사 부탁드립니다.
A. 먼저 반세기 동안 연극의 외길을 걸어오시며 저를 믿고 공동의 키를 맡겨주신 기국서 연출님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또, 매일 밤 무대 위에서 온몸이 부서져라 땀 흘려준 우리 자랑스러운 배우들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대를 세워준 스태프 동료들 덕분에 이 기적 같은 무대가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극장을 찾아주실 관객 여러분, 이번 <기국서의 햄릿>은 여러분이 알던 익숙한 연극의 경계를 기분 좋게 무너뜨리는 경험이 될 것입니다. 부디 극장에 오셔서 저희가 준비한 뜨겁고도 서늘한 에너지를 온몸으로 만끽해 주시길 바랍니다.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극장의 불이 켜지고 T자 무대 위의 서늘한 공기가 흐를 때,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우린 흔히 예술가를 장인(匠人)이라고 한다. 본래 장인은 ‘손으로 물건을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의미하지만, 예술가의 창작 활동이 심혈을 기울여 물건을 만드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그렇게 부른다.
인생을 연극판에서, 무대 위에서 보낸 장인들이 올리는 공연이 궁금한 이들은 <기국서의 햄릿>을 관극(觀劇)하러 오는 것을 추천한다.
필자 역시 연출가 기국서 님과 극단76의 창단 50주년을 축하하며 객석 어딘가에서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자 한다. <기국서의 햄릿>은 8일과 9일 강북문화예술회관 강북소나무홀에서 공연한다.
/디컬쳐 칼럼니스트 서홍석(연극 연출가 · 영화감독)